성경적 경제관: 르호봇경제(13) 단 물과 쓴 물을 내는 샘

글 김태구 박사 (노무라금융투자 CRO, 경제학박사)

2023-02-16 16:03:58  인쇄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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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등이란 단어가 있습니다. 한자로 葛藤입니다. ()’과 등나무 ()’자를 합친 것입니다. 칡과 등나무는 모두 덩굴식물입니다. 칡과 등나무를 한 곳에 심은 후 큰 버팀목을 세워 놓으면 다툼이 일어나는 것을 관찰할 수 있습니다. 칡 줄기는 오른쪽으로 감아 오르고, 등나무는 반대로 감싸며 올라갑니다. 결국에는 칡넝쿨과 등나무 덩굴이 서로 얽히고설키어 서로의 성장을 방해합니다. 식물의 성향을 세밀하게 관찰하고 갈등이란 단어를 만들어 낸 지혜가 놀랍습니다.

갈등이란 조화를 이루지 못하는 두 가지 이상의 것들이 동시에 존재하는 상태입니다. 의견이 달라서 충돌이 발생하고, 방향이 어긋나서 분쟁이 일어나고, 의도가 달라서 부딪치는 경우 등이 여기에 속합니다. 어쩌면 삶의 모든 영역에서 갈등은 불가피합니다. 따지고 보면 갈등은 천의 모양, 만의 모양을 갖습니다. 하지만 갈등을 최대한 단순하게 정의하겠습니다. 갈등은 원래의 기준을 벗어나는 것입니다. 원래의 기준을 벗어나면 마찰이 생깁니다. 원래의 기준을 벗어난다는 것은 또 다른 기준이 생기는 것입니다. 여러 기준둘이 섞이면 혼란이 옵니다. 그렇다면 원래의 기준이 의미하는 바가 무엇일까요?

예를 들어 한 소년이 눈앞에 있는 과녁을 맞추려고 손목에 차고 있던 시계를 던졌습니다. 그 시계는 과녁의 중앙을 비껴 나갔습니다. 그래서 그 소년이 말합니다. 이는 쓸모없는 시계라고... 이것이 타당한 평가일까요? 시계의 용도는 과녁을 맞추는 것에 있지 않습니다. 시계의 쓰임새는 시간을 알려주는데 있습니다. 시계는 시간을 말하는 것입니다. 바로 이것이 원래의 기준입니다. 시계에 대한 평가는 원래의 기준에 의해 이루어져야 합니다. 원래의 기준은 시계의 설계 목적과 관련되어 있습니다. 

팀 켈러는 그의 저서 답이 되는 기독교(Making Sense of God)”를 통해 이런 질문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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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의미는 만들어 내는 것인가요? 아니면 발견하는 것인가요? 삶을 살아가는 도덕적인 기준은 만들어 내는 것인가요? 아니면 발견하는 것인가요? 그는 이렇게 주장합니다. “하나님을 외면하는 사람은 삶의 의미를 만들어 냅니다. 삶의 의미는 객관적으로 있는 것이 아니고 주관적이며 전적으로 자신의 느낌과 판단에 의존한다고 생각합니다.”

팀 켈러는 토머스 네이글의 글을 인용하였습니다. “직업과 돈벌이 등 어떤 활동이 의미가 있으려면 다음 질문에 답해야 합니다. 이 모두는 무엇을 위한 것인가요? 목적은 무엇인가요? 예컨대 돈을 벌어 가족을 부양하기 위해서라고 답변을 하면 다음 질문으로 이어집니다. 그럼 그것의 목적은 무엇인가요? 대답은 다시 질문을 부릅니다. 이 과정이 무한히 반복됩니다. 삶의 의미에 대하여 대답을 하려면 우리는 우리보다 큰 무엇과 연결시켜야 합니다.”

사람은 왜 사는가, 어떻게 장사해야 하는가 등을 알고 싶어합니다. 그런데 사람을 설계하신 하나님을 제쳐 놓고 결론을 얻으려고 하면 미궁에 빠집니다. 결론에 도달하는 것이 불가능 합니다. 하나님이 없이 삶의 의미를 찾고자 하면 사람이 결국 원숭이나 모래알과 다를 이유가 없습니다.

하나님을 따른다면 하나님 안에서 삶의 의미를 발견해야 합니다. 삶을 살아가는 도덕적인 기준을 하나님의 법 안에서 찾아야 합니다. 그러나 이렇게 하면 대번 갈등을 초래합니다. 

육체의 소욕은 성령을 거스르고 성령은 육체를 거스르나니 이 둘이 서로 대적함으로 너희가 원하는 것을 하지 못하게 하려 함이니라(5:17) 

칡나무와 등나무가 반대 방향으로 도는 것처럼 성령과 육체의 소욕은 서로 거스리고 충돌합니다. 가나안 땅에 들어간 이스라엘 자손의 한 손에는 하나님의 법이 다른 손에는 가나안의 법이 들려 있습니다.(18:3~4). 한 손에는 공정한 저울추 하나가, 다른 손에는 두 개의 저울추(큰 것, 작은 것)가 들려 있습니다.(25:13~15) 한 손으로는 하나님을 경외하고 다른 손으로는 사람을 속입니다.(25:17) 한 손으로는 하나님을 사랑하고 다른 손으로는 돈을 사랑합니다.(딤후 3:2~4) 

원래의 기준과 동시에 다른 기준을 붙잡으면 갈등이 시작됩니다. 갈등에서 벗어나는 것은 복잡한 것이 아닙니다. 다른 기준을 내려 놓으면 됩니다. 그러나 다른 기준을 포기하는 것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닙니다. 거기에는 대가가 따릅니다. 

다음의 사분면을 살펴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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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서 있는 구간이 (a)가 아니라면 불가피하게 (c)에 서야 합니다. 왜냐하면 장사를 하는데 지속적으로 (b) 또는 (d)에 선다면 그 손해를 견딜 수 없기 때문입니다. 이제는 (c)에서 벗어나 (a)로 이동하려고 합니다. (c)에서 (a)로 가는 경로는 가 존재합니다. 그러나 의 경로는 큰 두려움으로 다가옵니다. (b)에 머물러야 하는 두려움입니다. 이것을 FOMO(Fear Of Missing Out)라고 합니다. 가나안의 법을 떠나므로 돈을 놓치는 것에 대한 두려움 입니다. 

사도 야고보는 FOMO에 붙잡힌 내게 단호하게 얘기합니다. 

한 입에서 찬송과 저주가 나오는도다 내 형제들아 이것이 마땅하지 아니하니라 샘이 한 구멍으로 어찌 단 물과 쓴 물을 내겠느냐 내 형제들아 어찌 무화과나무가 감람 열매를, 포도나무가 무화과를 맺겠느냐 이와 같이 짠 물이 단 물을 내지 못하느니라 너희 중에 지혜와 총명이 있는 자가 누구냐 그는 선행으로 말미암아 지혜의 온유함으로 그 행함을 보일지니라 그러나 너희 마음 속에 독한 시기와 다툼이 있으면 자랑하지 말라 진리를 거슬러 거짓말하지 말라 이러한 지혜는 위로부터 내려온 것이 아니요 땅 위의 것이요 정욕의 것이요 귀신의 것이니 시기와 다툼이 있는 곳에는 혼란과 모든 악한 일이 있음이라 오직 위로부터 난 지혜는 첫째 성결하고 다음에 화평하고 관용하고 양순하며 긍휼과 선한 열매가 가득하고 편견과 거짓이 없나니(3:10~17) 

한 샘에서 단 물이 나고 동시에 쓴 물이 나는 경우가 결코 없습니다.

동일한 이치로 내가 한 입으로 하나님을 찬양하고 동시에 그 입으로 사람을 저주할 수 없습니다. 알고보니 나는 FOMO에 붙잡힌 것이 아니라 땅의 지혜에 붙잡힌 것이고 정욕에 붙잡힌 것입니다. 이것이 갈등의 이유가 됩니다. 손에 쟁기를 잡고 뒤를 돌아보면 하나님의 나라에 합당하지 않습니다.(9:62) 

1956년에 무일푼에 홀로 미국 유학길에 오른 시골 청년이 있었습니다. 그 청년은 미국에서 패코철강을 창업했습니다. 그리고 미국 경량 철골 시장을 60% 점유하는 철강업계 작은 거인이 되었습니다. 한국 기업인으로는 처음으로 미국 LA지역 올해의 기업인에 선정되었습니다. 그 청년이 백영중 회장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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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9년에 나는 정직과 성실로 미국을 정복했다는 그의 자서전이 출간 되었습니다. 그의 경영철학은 정직과 성실이었습니다. 그는 정직과 성실의 길을 끝까지 가기위해 하나님 앞에서 피나는 기도를 하였습니다. 

물고기가 진정한 자유를 누리려면 물을 떠나면 안됩니다. 물이라는 제약이 있어야 자유를 누립니다. 하나님의 기준은 제약 조건이지만 그 제약이 있을 때 진정한 자유가 주어집니다. 히브리어 사람의 언어에 심하(שִׂמְחָה)라는 단어가 있습니다. 심하는 행복을 뜻합니다. 그 행복은 하나님의 뜻에 따라 올바른 행동을 할 때 얻는 것입니다. 

돈을 놓치는 FOMO에 붙잡히면 갈등이 끝나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상급을 놓치는 FOMO에 붙잡혀야 비로소 갈등이 끝이 납니다. 또는 의 경로이든 (a)의 구간으로 가는 것은 하나님의 나라와 의를 구하는 것입니다. 그것은 올바른 것입니다. 그 길을 중단하지 않으면 심하가 찾아 옵니다. 그 길을 중단하지 않으면 주인이 책임지십니다. 

그러므로 염려하여 이르기를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무엇을 입을까 하지 말라 이는 다 이방인들이 구하는 것이라 너희 하늘 아버지께서 이 모든 것이 너희에게 있어야 할 줄을 아시느니라

그런즉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6:31~33)

(다음 호: How vs Wh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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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김태구 박사 (노무라금융투자 CRO, 경제학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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