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덕성 교수의 ‘이단 바로 보기‘(4) 동물의 왕국

“한국교회는 합당하지 않은 이단정죄로 추락된 권위와 위상을 회복할 수 있는 범 교단적인 대책, 비책이 필요하다.”

2022-08-31 00:07:29  인쇄하기


대부분의 이단연구가들은 표준화된 박사학위 과정을 밟지 않았다. 학술적 연구업적이 거의 없다. 특정인의 사소한 오류를 침소봉대, 과장, 억지 해석하는 경향이 있다. 정치적, 교권적, 자파 이기주의 동기와 결탁하여 이단정죄에 앞장선다. 감정풀이 이단정죄의 칼을 휘두르는 게 아닌가 하는 인상을 준다. ”-본문 중에서

 한국교회 안팎에는 억울하게 이단으로 정죄당한 자가 없는가? 한국교회는 무고한 자를 이단자로 몰아 정죄하지는 않았는가? 흔하지는 않겠지만 단 한 명의 억울한 피해자가 있어도 그것은 심각한 일이다. 교회의 이단정죄는 사회법정의 사형선고와 다르지 않다. “한 번 이단은 영원한 이단이다. 그러므로 너는 우리 옆에 오지 말라는 잔인한 사망 선고다.

아이는 개구리에게 장난삼아 돌을 던지지만, 개구리에게는 생사가 달려 있는 중대한 사안이다. 부당한 이단정죄는 당사자의 평생의 신앙인격과 삶을 한 순간에 망가뜨린다. 타인의 신앙인격을 무참히 짓밟는다. 대중은 그를 근접하지 않아야 할 인물로 각인한다. 등을 돌린다. 이단자라고 정죄를 당한 자는 성도의 교제에서 단절된다. “나는 이단자가 아니다하고 외치고 발버둥 쳐도 명예 회복이 이루어지지 않는다. 이단자라는 꼬리표를 일평생 달고 다니게 된다.

한국에는 기상천외한 이단자들, 악질적인 이단들, 악마에 의해 움직이는 이단자들이 설쳐댄다. 자신을 재림예수라고 자처하는 이단자들도 있다. 이단은 기독교와 그리스도의 교회의 위상에 상처를 낸다. 교회를 훼파하고, 복음전파를 방해한다. 이단과 사이비기독교는 사회의 불안정성과 불확실성을 자파 세력 확장의 효과적인 도구로 이용한다. 논리적으로 부당한 주장을 은유적으로 풀이하여 합리화한다. 자파 교리가 현실화될 수 있음을 보여주려고 성경에서 억지로 궤변적 교리의 근거를 찾는다.

한국교회의 이단 시비는 1927년의 감리교도 유명화로부터 시작되었다. 그는 자신 안에 예수가 친히 재림했다고 주장했다. 그는 자기 안에 있는 예수의 임재 때문에 자기가 하는 말이 곧 예수의 말이라고 주장했다. 장로교도 김성도는 1923년에 입신을 했다고 했고, 1930년에 자신이 새로운 구세주, 새로운 주님이라고 주장하면서 무리를 지어나갔다. 백남주는 유명화의 제자로, 사탄과 하와와 성관계로 말미암아 인간이 태어났으며 따라서 사람의 피가 더렵혀졌고, 재림주와 성관계를 거쳐야 피가 깨끗하게 된다고 주장했다. 백남주의 제자 김백문은 피가름 교리를 체계화했고, 김백문의 제자 문선명은 이 교리를 기초로 새로운 종교집단을 만들었다. 이 맥락에서 박태선은 자신을 감람나무로 호칭하면서 재림주로 미화했다.

교회가 이단재심을 거쳐 원인무효 결정을 내린 경우도 있다. 무교회주의자 김교신, 신비주의자 나운몽, 신비주의자 이용도, 오순절주의자 조용기가 이 범주에 해당한다. 근년에, 한국기독교총연합회가 이단으로 분류되어 온 두 그룹을 심의했다. 검증 과정에서 공청회를 하고, 당사자를 불러 직접 이야기를 들었다. 질문과 답변을 기록된 형태로 정리하여 대중에게 공개했다. 이는 에큐메니칼 단체들이 이단 심의와 판별의 권한을 가졌는지 여부를 떠나, 한국교회의 이단검증 방식이 일보 전진했음을 시사한다.

근년에 이르러 한국교회 안팎에는 이단이 많아졌다. 한국교회는 바야흐로 이단시비 시대를 맞이했다. 세계의 이단들을 다 합친 것만큼이나 많다고 알려진다. 이 점이 수상쩍다. 순복음교회계 교회사학자 김신호 박사는 그 원인을 교회의 이단정죄 남발과 이단감별사로 불리는 일군의 이단연구가들이 지나치게 이단정죄를 했기 때문이라고 본다.

각 교단의 이단판별위원회와 개인 이단연구가들이 교회와 진리 보호에 이바지한 점을 부정할 수 없다. 그러나 적합하지 않은 판단을 하고 또 지나친 감이 있는 것도 사실로 보인다. 대부분의 이단연구가들은 표준화된 박사학위 과정을 밟지 않았다. 학술적 연구업적이 거의 없다. 특정인의 사소한 오류를 침소봉대, 과장, 억지 해석하는 경향이 있다. 정치적, 교권적, 자파 이기주의 동기와 결탁하여 이단정죄에 앞장선다. 감정풀이 이단정죄의 칼을 휘두르는 게 아닌가 하는 인상을 준다. 상대방의 미숙함, 신앙교육의 빈곤, 신학적 깊이와 균형 부족을 구실삼아 이단으로 몰아붙이기도 한다.

이단연구가들의 글을 접하면, 우선 부실하다는 인상을 받는다. 정확도가 떨어지고 논리의 비약이 심하며 역사성이 빈약한 특징이 드러난다. 허수아비공격, 인신공격, 성급한 일반화, 논점일탈, 수레를 말 앞에 두기, 분할의 오류, 결합의 오류, 원인오판, 모순을 내포한 전제, 우물에 독 뿌리기, 의도확대, 독단, 흑백논리, 범주착각, 원칙혼동, 다수 판단의 오류 등이 발견되기도 한다.7 이단연구가 자신이 속한 교회는 응당 정통교회 또는 허물없는 교회라는 대 전제를 가지고 접근한다. 그리스도 안의 형제와 이웃 신앙고백공동체를 향한 고뇌가 엿보이지 않는다.

이단연구가들에게는 이단이 필요하다. 이단이 존재하지 않거나 계속 등장하지 않으면 그들은 실업자가 된다. 같은 이유 때문인지 모르나 이단연구가들은 끼리끼리 단체를 만들고, 에큐메니칼 단체를 배경삼아 활동을 하기도 한다. 자기의 입맛에 맞는 결과가 나오지 않으면 시비를 건다. 이단 혐의 그룹에 기웃거리며 이야기를 들어주고 실리를 챙키는 이단연구가들도 없지 않은 듯하다.

어느 기독언론인은 한국교회의 이단판별 과정의 모순들을 다음과 같이 열거한다. 첫째, 자파 치리회에 속하지 않은 자를 치리의 대상으로 삼아 이단으로 정죄한다. 자기 교단 소속이 아닌 인물에 대한 치리회 활동을 주저하지 않는다. 치리회가 같지 않은 경우는 항소가 불가능하다. 판결에 이의를 제기하거나 재심을 요청하면 우리 교단 치리회 회원이 아니므로 원고 자격이 없다는 말로 거절한다. 둘째, 당사자에게 석명(釋明) 기회를 주지 않는다. 궐석재판을 유효한 것으로 여긴다.

셋째, 이단 혐의를 받는 당사자에게 소명(疏明)을 요구하지 않는다. 증인이나 변호인의 반대심문을 허용하지 않는다. 넷째, 자파의 교리를 기준 삼아 다른 기독교 전통에 속한 사람을 정죄한다. 다섯째, 자파 교단 사람에게는 면죄부를 주고, 그 교단의 보호 아래 있지 않는 사람에게는 엄격한 잣대를 들이댄다. 여섯째, 종교다원주의를 용인하고 로마가톨릭교회와 정교회를 교회일치의 파트너로 받아들이고 펠라기우스주의를 표방해도 이를 비판하지 않는다. 일곱째, 이단심문 과정에서 고발자가 누구인지 알려주지 않는다. 여덟째, 고발인과 재판관이 동일인인 경우도 있다.

로마가톨릭교회를 형제로 여기는 교단들은 프로테스탄트교회와 로마가톨릭교회의 교리적 차이를 무시한다. 로마가톨릭교회를 형제라고 일컬으면서 한없는 관용을 베푼다. 그러나 프로테스탄트 공동체에 속한 작은 그룹이나 무명인들의 사소한 허물을 트집 잡아 냉혹하게 정죄한다. 규모가 큰 집단에 대해서는 관대하고 작은 집단에는 사소한 차이를 구실삼아 가차 없이 이단으로 정죄한다. 예장 통합, 기장, 기감 등은 예수 밖에도 하나님의 구원이 있다고 주장하는 종교다원주의자, 만인보편구원주의자에게는 한없는 관용과 아량을 베풀면서, 적대적인 인물에게는 사소한 허물을 트집 잡아 이단으로 정죄하는 이중성을 보인다.

어느 기독교언론인은 교회일치의 관점에서 자신이 속한 예장 통합 교단의 불공정하고 편향되며 모순적인 태도를 동물의 왕국에 견주어 아래와 같이 지적한다. 이 그룹은 에큐메니칼 정신만이 세계교회가 살 길이라고 믿는 집단이다. 1959년 합동측과 분열하는 커다란 아픔을 감수하면서도 세계교회와 함께 에큐메니칼 노선을 견지해 왔다. 2000년대에 진입하여 기독교 2천년 역사에서 정통과 이단의 오랜 시비가 있었고, 에큐메니칼 운동이 필요함을 깨달았다. 에큐메니칼 운동의 목적은 각 교파의 차이점에도 불구하고 교파 간의 다름을 이해하고, 서로 그리스도 안에서 한 형제가 되는 데 있다.

예장 통합의 에큐메니칼 정신에는 로마가톨릭교회 용인도 포함되어 있다. 로마가톨릭교회는 십계명을 변조하여 사용하고 화체설, 교황무오설, 연옥설, 마리아 승천설 등 성경과 전혀 관련 없는 교리들을 믿고 가르친다. 예장 통합은 로마가톨릭교회가 고대 에큐메니칼 교리를 믿는다는 이유로 교리는 다르지만, 다른 전통을 가진 같은 교회라며 포용한다.

왜 이처럼 넓은 아량을 가진 에큐메니칼 교단인 예장 통합이 같은 개혁신앙과 정통신학을 가진 사람들을, 표현이 조금 다르다는 이유로, 가차 없이 이단으로 정죄하는가? 이해하기 어려운 행태이다. 예장 통합은 1980년대 이후 60여 명이 넘는 인사들을 이단자로 정죄해 왔다. 덩치가 큰 교단에 속한 자들은 건들지 못하고, 만만한 군소교단 소속 목회자들만 이단자라고 공격했다.

예장 통합의 행태는 대형 교단의 교권적 횡포라는 말 밖에 다른 말로 설명할 수 없다. 한국교회의 이단 논쟁은 동물의 왕국과 같다. 포식자들이 높은 곳에서 짐승 떼의 움직임을 가만히 지켜보다가 무리에서 이탈하거나 나약해 보이는 놈을 골라 집요하게 공격하여 쓰러뜨린다. 넘어지면 너도나도 달려들어 뜯어먹는다.

한국교회 주변의 이단들은 자기네도 성경적인 정통이라며 설쳐대고 있다. 한국교회의 이단대책은 겉돌고 있다. 걸핏하면 엉뚱한 이단 시비를 해대는 예장 통합 같은 교단이 있기 때문이다. 예장 통합 소속 이단감별사들은 자기 교단을 망치고 있다. 한국교회를 망치고 있다.

이상의 지적은 의미심장한 자기반성적 고백이다. 예장 통합이 상을 주어야 할 자에게 벌을 주어온 교회의 실패 전철을 따르고 있음을 말해준다. 성경과 성경적 진리를 기준으로 이루어지지 않은 이단정죄가 있었음을 시사한다. 논점일탈, 원인오판, 의도확대, 범주착각, 우물에 독 뿌리기, 허수아비 공격, 집단적 증오 또는 분노의 오류 따위에 의해 이단자로 정죄한 경우가 없지 않다는 것이다.

이단보다 더 무서운 것은 교회가 이단판별, 이단정죄의 권위를 상실한 점이다. 교회가 이단이라고 정죄를 해도 호소력이 없다. 밥그릇 차지하려는 다툼처럼 보인다. 한국교회는 합당하지 않은 이단정죄로 추락된 자신의 권위와 위상을 회복할 수 있는 범 교단적인 대책, 비책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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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덕성 교수

학력·경력 : 예일대학교 (S.T.M.) 에모리대학교 (Ph.D.) 하버드대학교 객원교수 (1997-1998) 고려신학대학원 고신대학교 교수 (1989-2009) 기독교사상연구원 원장 (2010-현재) 브니엘신학교 총장 (2013-현재)

저서·역서

교황신드롬: 로마가톨릭교회와 세계교회협의회』 『신학충돌 II: 한국교회와 세계교회협의회』 『신학충돌: 기독교와 세계교회협의회KOREAN CHRISTIANITY 쌍두마차시대』 『종교개혁전야』 『에큐메니칼운동과 다원주의』 『정통신학과 경건』 『한국교회 친일파 전통』 『바르멘신학선언과 장로교인 일본』 『일본기독교의 양심선언』 『양심선언과 역사의식』 『개혁주의 신학의 활력』 『개혁신학과 창의적 목회』 『빛나는 논지 신나는 논문쓰기』 『개혁주의 전통() 개혁주의 전통의 정신() 신학적 해석학() 소교리문답강해()

수상

한국복음주의신학회 신학자대상 수상 (2001)

[다음호 : 글을 마치며] / 윤광식 기자(kidokilbo@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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