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교회 전도사화(傳道士禍)(6) 생명건 전도자들①(예장고려, 고신 편)

전도한다는 이유로 하루 아침에 교단에서 내몰린 그들은 아무런 저항도 하지 않았다.

2023-02-04 05:43:44  인쇄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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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류광수 목사의 신학사상은 정통개혁주의 임을 확인해주는 성명서에 서명 날인 한 목사들 명단 (1995년 9월17일 기독선교신문)

한국기독일보는 한국교회 주요교단들이 다락방 전도운동에 참여 한다는 이유로 제명 면직시킨 역사적 사실을 조사하기 위해 무려 5년을 각 교단을 누비며 조사했다. 30년전 사건을 추적하고 조사함에 있어서 자료가 소실되거나, 교단이 분열된 곳 등은 한계가 있었지만 한국교회 주요 교단들을 추적조사하여 생명건 전도자들의 명단을 확보해 역사적 기록으로 남길 수 있어 다행이었다. 본 내용을 읽는 독자 분들의 추가적인 제보가 있다면 보완 하고자 한다. 내용이 방대하여 주요 교단별로 순차적으로 게재한다. 

글을 시작하며

한국교회 역사상 수백여 명의 목사들이 전도운동에 참여한다는 이유로 자기 교단으로부터 제명, 면직 당하는 일이 발생했다. 다락방전도운동에 동참했던 1만여 목회자 중 교단의 눈치를 보며 많은 목사들이 떠났지만 끝까지 오직 초대교회 성경적 전도운동을 하겠다는 목회자들은 자기교단으로 부터 냉혹하게버림을 받았으나 그들은 그 어떠한 저항도 항변도 하지않고 그 핍박을 받아들였다.

언젠가 역사가 판단하겠지만 다락방 전도운동에 끝까지 동참했던 500여명의 목사들을 이단이란 굴레를 씌워 제명 면직 처분을 내린 것은 한국교회사에서 부끄러운 일로 기록될 것이다. 대부분의 목회자들이 주요 정통교단에서 개혁주의 신학을 수학한 자들이었다는 사실은 다락방 전도운동이 개혁주의 신앙에서 결코 어긋나지 않았다는 것을 증명함에도 불구하고 중세교회 마녀사냥식 종교재판처럼 이단 누명을 씌워 무자비하게 도륙한 사건은 전도사화(傳道士禍)였다. 

1995년부터 각 교단 차원에서 다락방에 대한 핍박이 본격화되기 시작했다. 예장고려로부터 시작된 핍박은 고신, 합동, 개혁, 통합 기성, 기침, 기감 등의 교단으로 번졌다. 이 핍박은 2013114일 한국기독교 총연합회가 다락방 전도운동은 이단성이 없다고 해제선언을 하기 까지 계속되었다고 할 수 있다.

수많은 목회자들이 다락방 전도운동 관련자라는 죄 아닌 죄명아래 제명, 면직을 당해왔고 심지어 개척한 교회를 몰수당하고 한 겨울에 거리로 쫓겨난 목회자도 있었다. 이 핍박은 국내에 국한되지 않고 해외 선교사들에게도 이어졌다.  

1. 예장고려총회의 핍박 (현재 고신총회와 통합) 

고려총회는 1995년 제45회 총회에서 한국교단 가운데 가정 먼저 다락방 전도운동을 유사기독교운동내지 사이비기독교운동으로 규정했다. 그 직후 가을 정기노회를 통해 전국적인 징계조치를 내리기 시작했다. 그 배후에는 석원태 목사(경향교회)가 있었다. 

서울남노회(이무영 노회장): 1995년 제45회 가을 정기노회를 열고 이우찬 목사(수정교회), 설문희 목사, 강군일 목사(탑동제일교회), 심최용 목사 등 4명을 제명하였다. 1997년 김경식 목사를 같은 이유로 제명했다.

경인노회: 목사 3명을 다락방 관련자라는 이유로 제명처리 하였다  

■ 회고: 이우찬 목사( 현, 수정교회 원로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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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측이 가장 먼저 다락방을 정죄하게 된 배경은 단순한 개인적 감정이 노골화 된 것이다. 경향교회 모 장로가 다락방 1차 합숙훈련에 다녀온 직후 당회장 석원태 목사를 만나 이제야 복음을 제대로 깨달은 것 같다.’라고 말하자 그럼 지금까지 나는 뭐냐고 다그치면서 즉시 다락방에 대해 조사할 것을 신학부에 지시하고 K, A모 신학교수 2명에게 특명(?)을 주어 다락방에 대해 철저히 조사할 것을 지시했다고 한다.

실제 신학교수들이 다락방 1차 합숙훈련까지 참가했다는 말도 있었으나 근거를 찾을 수가 없었다. 이후 총회장, 노회장, 서기 등이 경기도 이천 미란다호텔에서 만나 이대로 놔두면 한국교회에 큰 문제 온다.’라고 하며 신학적으로 엮어서 처리할 것을 모의했다. 그해 여름 목회자 수련회에 신학연구보고서를 보고하고 가을총회에서 이를 처리할 것임을 밝혔다고 한다.

당시 다락방에 참여한 목사들은 가을 총회에서 총대권을 박탈당했고 소명절차도 없이 제명 처리 당했다.

 2. 예장고신총회의 핍박

예장고신은 1995918일부터 22일까지 제45회 총회(총회장:이금조 목사)를 은광교회에서 개최하고 지금까지 관련된 교단 내의 인사에 대하여는 불문에 부치되 다락방과 계속 관련하는 인사에 대하여는 적절한 권징을 하기로 하다.‘라고 가결 하였다. 가장 먼저 다락방관련자를 치리한 곳은 부산노회였다.

부산노회: 소속노회 목사들과 성도들이 다락방전도운동에 대한 참여가 늘어나자 위기를 느끼고 199447일 다락방 전도 집회나 전도운동 참여를 금지하기에 이르렀다. 이에신남호 목사(당시 성민교회)가 기자회견을 열고 다락방전도운동의 정당성을 밝히고 신앙양심 선언서를 교계신문에 게재하고 부산노회를 탈퇴하자 415일 제명 처분하였다.

경북노회: 1995채강식 목사를 제명하고 199610이성대 목사(2삼승교회), 김영진 목사(신월교회)를 제명처리 하였다. 이후 1998년 봄 노회에서 김대은 목사를 면직했다.

여순노회: 199614박세근 목사를 제명하고, 조신근 강도사를 면직하였다.

마산노회: 1996410일 정기회를 제일문창교회에서 열고 최영수 목사(산서교회에게 10일간의 유예를 주었으나 최 목사가 노회의 권유에 불복함에 따라 421일 면직공고하고 430일까지 거주지를 옮길 것을 요구했다.

정정권 목사1인을 면직하였다, 이후 1997년 가을노회에서 박한식 목사(가야복음교회)를 면직하고, 진종섭 목사(마산흰돌교회), 최영수 목사(함안다락방교회)를 제명하였다.

동서울노회(노회장 양성우 목사): 199656일 다락방운동 관련 총회지시 불복을 사유로 오권성 목사(원주시민교회)를 제명했다. 오권성 목사는 당시 다락방전도협회 강원도지부장 및 전도학교 교장으로 적극적인 활동을 펼쳐왔으며 노회의 수차례 회유에도 불구, 자신의 신념을 굽히지 않았다. 1996525일 임시회에서 최수근 목사1인을 면직하였다.

중부산노회: 1996613일 임시노회에서 강은중 목사(부곡동교회)1인을 면직하였다. 이후 1997허남길 목사, 1998년 봄노회에서 강대군 목사(군목)를 제명하였다.

경서노회: 1996년 봄 정기노회에서 김성우 목사, 박희제 목사를 제명하였고, 가을 임시노회에서 김진국 목사(화령제일교회),이상철 목사(상주화달교회)를 제명하였다.

경남노회: 1997년 가을노회에서 장성철 목사(제일진해교회)를 제명하고, 1998년 봄노회에서 박재한 목사(창원 산남교회)를 제명하고, 최흥국 목사(창원내동교회)를 면직시켰다.

울산노회: 1997년 가을노회에서 허만혁(성은교회), 김인용 목사(울산로교회) 2인을 면직하였고, 98년 봄 노회에서 심재춘 목사(미포교회 부목사)를 면직했다,

동부산노회: 정성복 목사를 면직했다.

인천노회: 1998년 봄 노회에서 최태식 목사(호산나교회)를 제명했다.

충청노회: 김광욱, 김광한 목사를 제명하였다,

대구노회: 2012년 봄 정기회에서 열방선교회 소속 선교사인 박창웅 목사를 면직시켰다. 박 선교사는 인도 8, 미국5, 중국2년 등 오랫동안 선교사역을 했으나 중국을 마지막으로 하고 다락방전도운동에 참가하면서 면직 처리되었다.

회고: 신남호 목사(덕평 임마누엘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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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고신대학원 2학년 말쯤 부산 수정동에서 성민교회를 개척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2년 뒤에 초량동에 있는 연화사라는 절간을 사게 되었는데 계속해서 여러 가지 전도방법을 찾아보았습니다. 그러다가 1990년도 여름에 수영로교회에서 다락방전도운동을 처음 알게 되었고 류광수 목사님의 메시지를 듣게 되었습니다. 당시 들으면 들을수록 힘이 나는 메시지였습니다. 19912월경에 부산 만덕에 있는 백양교회에 개척교회를 위한 초청집회가 있었는데 그때도 류 광수 목사님이 강사로 오셔서 복음에 대해, 그리스도에 대해서 세계선교에 대해 들으며 은혜와 감동을 받았습니다. 당시 개인적으로는 목회도 잘 모르면서 너무 일찍 목회전선에 뛰어든 것 아닌가 하는 자책이 들 정도로 목회하는 것이 너무나 힘이 들 시기였는데 그런데 류 목사님을 통해 메시지를 들으니 너무나 힘이 나고 믿음이 생겼습니다. 그래서 아! 이 성경적 다락방전도운동이야말로 내가 평생 해야겠다고 결심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 이후 계속해서 다락방전도운동을 하니 여러 가지로 열매가 나타나게 되었습니다. 청년들이 30명 정도 모이고 어른들까지 합해서 50명 정도 모이는데 돌이켜보니 정말 행복한 시절이었습니다. 그 분들 중에 교역자가 4명 나왔고(목사 3, 전도사 1, 사모 1), 어떤 분은 정신 분열증이 심해서 1년에 한 번 정도 병원에 입원하는 분이 있었는데 당시 우리교회 집사님이 소개를 해서 만나보았습니다. 예배를 드리고 계속해서 다락방을 하며 말씀운동을 하는 중에 정신병이 치유되어 사업도 하게 되는 응답을 많이 받게 되었고 온가족이 예수를 영접하고 신앙생활을 잘 하게 되었습니다. 또 미용실을 하는 분에게 전도를 했는데 온가족이 예수를 영접하고 직원들도 하나 둘 영접하고 지금도 사명자로 쓰임 받는 일꾼들도 있습니다. 이듬해인 19924월에 꿈에 그리던 목사안수를 받게 되었습니다. 부산 중심가에 있는 고신 부민교회서 안수를 받게 되었고 더욱 현장을 살려야겠다고 마음먹고 나름대로 열심히 전도운동을 했습니다. 9월에는 다락방전도훈련의 핵심인 1차합숙 훈련을 받게 되었는데 훈련 중에 북받쳐 오르는 감동으로 눈물을 흘렸습니다. 당시에 우리 동기들이 100여명 정도 있었는데 개척을 한 동기는 저 밖에 없었고 절간을 사서 개척을 하니 그 소문이 교단 전체에 퍼지고 절간 목사라는 별명도 얻게 되고 많은 동기들이 기대를 하고 있는 그런 상황 이었습니다. 기독교 방송에 소개되어 새롭게 하소서 간증 프로그램에 출연하게 되었는데 방송을 듣고 미국에서 달러를 보내 주셨고 전라도와 인천에서 편지와 헌금을 보내 주기도 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문제가 생겼습니다. 19943월 경에 부산노회가 영도에서 열렸는데 다락방운동은 사이비성이 있으니 동참하지도 말고 듣지도 말라는 노회의 결정이 내려졌습니다. 저는 심한 갈등에 빠지게 되었습니다. 1주일 정도 고심하며 기도하다가 하나님 앞에서 다락방전도운동을 계속하기로 결단하고 교단을 탈퇴하기로 하였습니다. 저는 고신 성민교회서 담임목사로 그냥 참고 목회하느냐? 양심적으로 이 전도운동을 계속하느냐? 의 갈림길에서 다락방전도운동을 하는 것이 하나님 앞에서 참으로 유익하고 하나님이 기뻐하시겠다는 확신이 왔던 것입니다. 그래서 기독교신문, 크리스챤신문, 교회연합신문에 양심선언서라는 제목으로 교단탈퇴 공고를 내고 다락방 운동을 계속하기로 하였습니다. 탈퇴공고를 하고 나니 개척교회를 잘 감당하던 젊은 목회자가 왜 갑자기 교단을 탈퇴하고 다락방운동을 하게 되었는가가 지역 언론사들의 초미의 관심사 였습니다. 부산지역 기독교 언론사 편집장 10여명이 기자회견을 요청해 부산역에서 하게 되었습니다. 그 자리에서 저는 다락방전도운동은 성경적이며 결코 이단은 아니며 정치적인 모함에 의해 사이비라는 공격을 받게 되었다는 사실을 설명하였습니다. 교회가 성장하는 바람에 시기와 질투를 받게 되고 양심적으로 잘못된 교리가 조금도 없음을 나는 확신하고 기자들의 질문에 답변을 하였습니다. 교단을 탈퇴하니 교회도 사임하고 갈 곳이 없던 차에 동삼제일교회(지금 임마누엘교회) 부교역자로 연결이 되어져 영도에서 사역을 감당하게 되었습니다. 그후 고신 교단에서는 부노회장을 비롯해 여러 목사님들이 얼른 지난날을 회개하고 교단으로 복귀하라고 권면하면서도 양심선언서가 혼자 작성한 것인가? 아니면 누구의 지침을 받은 것인가를 캐물었습니다. 다른 사람이 시켜서 했다고 하면 받아 주겠다는 뜻이었겠지만 저는 스스로 결정한 것이라고 답변을 하였습니다. 결국 저는 고신 교단으로부터 제명이 되었습니다. 제명 후 많은 동기들과 동문들과 헤어지게 되었고 마치 가출하는 기분이 들었습니다. 특히 가장 친했던 친구 목회자들과 헤어지는 것이 가슴이 아팠습니다. 아주 친한 친구는 어떤 아는 형님에게 내 얘기를 해서 전화로 2시간을 열변을 토하면서 충고를 하고 핀잔도 주면서 설득을 하기도 하였지만 그 어떤 소리를 해도 저를 돌이킬 수는 없었고 더 이상 고신에 대한 미련은 없었습니다. 그 이후 1996년 광양의 박세근 목사(1년 후배)가 제명 당하였고 이어서 김진국 목사 채강식 목사 박한식 목사 김광욱 목사 최영수 목사 김영진 목사 등 10여명의 동기들이 제명 면직 당하였습니다. 제가 알기로는 전국에서 많은 목회자들이 다락방전도운동에 참여하게 되었는데 그중에서도 고신교단과 합동교단에서 가장 많이 참여하고 있었습니다. 전국적으로 다락방의 바람이 불자 많은 목회자와 사명자들이 합숙훈련을 비롯해 다락방 집회에 몰리다 보니 이에 불안을 느낀 정치권이 제제를 가하기 시작하면서 서서히 압박하기 시작하였습니다. 대부분 목회자들이 총회의 압박에 못 이겨 다락방집회에 참석하는 것을 꺼리게 되었습니다. 대다수 목회자들이 양심적으로는 이 운동이 옳다고 고백하면서도 교단의 압박에 눌려 집회에 참석을 못하는 실정이었습니다. 성직자가 되어서 진리를 진리라고 인정하지 못하고 옳은 것을 옳다고 하지 못하는 목회자들을 볼 때 참으로 안타깝기 그지없습니다. 진리를 위해 생명 걸어야 하는 목회자로서 이해할 수 없는 일이라 봅니다. 그래도 양심적인 목회자 500여명이 사실상 영적 순교인 제명, 면직을 당하면서도 오직 전도에 매진하여 대한민국을 넘어 세계로 다락방전도운동 확산되는 것을 보면서 다락방전도운동이야말로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사역임을 확신하면서 전도자의 대열에 서있다는 사실만으로도 너무나 감사합니다.

/ 다음호 (합동편)  /  한국기독일보 발행인 윤광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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