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각골난망(刻骨難忘)”

내 평생의 은혜 ‘다락방전도운동’

2025-11-23 00:10:45  인쇄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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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날 예장합동 친구 목사가 내게 너는 왜 다락방을 떠나지 못하느냐고 내게 물었다. 그때 나는 다락방의 은혜가 내게 각골난망(刻骨難忘)’이다.”라고 답했다.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 맘아 구원 받은 은혜가 뼈에 사무칠 만큼 너무나도 내 인생 여정 동안 넘치는 은혜를 받은 곳이 다락방이다.

30여년전 내가 처음 다락방을 접한 때는 갓 결혼한 30대였다. 당시 나는 성결교회에 다녔는데 담임목사님이 류광수 목사가 시작한 다락방운동을 접하면서 자연스레 교인들도 류광수 목사 다락방 메시지에 충격과 은혜를 받았고 나 역시 오직 예수 그리스도말미암은 구원의 은혜를 사모하며 부산 다락방 합숙훈련에 참가했다. 그 훈련은 종교인에 불과하던 내 생을 바꿨다.(참고로 우연인지 운명인지 결혼 전 아내가 출석하던 안양비산교회 이OO담임목사가 합숙훈련 동기였다.)

어느 날 부산 월화 전도집회에 부산에 갔다가 당시 부산에서 아파트 건축 내장공사를 하시던 부모님 생각에 집회를 마치고 담임목사님께 부모님에게 복음을 전해야 할 것 같다는 부탁의 말씀을 드렸더니 목사님은 쾌히 동행해 주셨다.

당시 늦가을 이었고 바닷가 근처라 밤 바람이 차가왔다. 부산지리도 잘 몰랐던 탓에 해매이다 황량한 공사장에 부모님이 머물고 계신 컨테이너를 찾았다. 그때가 거의 밤11시 가까이 되었던 탓에 주무시다가 우리를 맞이하셨다. 공사 현장에서 고생하시는 부모님의 몰골이 안스럽게 다가왔다. 목사님은 왜 예수만이 구세주인지 복음을 전했다. 그리고 부모님은 난생처음 예수님을 그리스도로 영접하셨다. 어머님은 당시 감격과 감사의 눈물을 흘리셨고, 아버님은 신앙생활을 결심했다.

그리고 몇년 뒤 아버지는 사업을 정리하신 후 우리교회로 오셨고 그리고 어느날 아버지는 조상제사를 스스로 끊어버리셨다. 더이상 우상숭배의 저주와 재앙을 후손들에게 물려주지 않겠다는 단호한 결심이셨다. 이 결심과정에 다락방 메시지가 결정적 영향을 미쳤다. 철저한 유교집안에서 장손으로 태어난 죄로 우상숭배를 할 수밖에 없었던 운명을 바꾼 것이다.  그리고 나와 함께 교회 건축에 헌신하셨다. 그리고 늘 새벽예배를 지켰다.(아버지는 새벽예배 나가신지 얼마 안돼 평생 하루 몇갑씩 피우던 담배를 단번에 끊으셨다. 지금생각하면 하나님의 은혜이다.) 그후 아버지는 장로, 어머니는 권사가 되셨다.

우리가문은 그렇게 복음가문으로 변화되었다.

다락방 복음전도운동은 우리가문에 큰 은혜를 주었다. 이제 대를 넘어 후대들이 다락방 복음운동 속에 있다는 것에 감사할 따름이다.

최근 다락방전도운동에 함께하던 일부 인사들로 인해 이런저런 논란이 생기고 그것이 마치 다락방 전체 인양 다락방을 떠나 비난하는 자들이 생겨났다. 참으로 안타깝고 오히려 그들이 교회를 너무 모른다는 생각에 불쌍하다는 생각마저 든다.

지상 교회의 머리는 예수 그리스도 이지만  교회 구성원 들은 완벽하지 않다. 그렇기에 교회 안은 늘 평안하지 않다. 오히려 그문제들로 인해 복음을 체험하는 것이 교회이다. 아무리 이런저런 문제가 생겨나도 복음 안에서 성령의 은혜로 하나님의 뜻대로 해결되어지는 것이 교회이다. 이는 교회사가 그 증거이다.

다락방 역시 전도 선교의 목적을 가진 교회공동체이다. 30여년동안 다락방이 펼친 전도 선교운동은 국내는 물론 세계교회사에 미친 공헌 역시 크다고 할 것이다.

다락방의 절대다수의 교회, 목사 성도들은 여전히 성격적인 복음운동 속에서 인생의 삶이 변화되고 가문이 바뀌는 은혜를 체험하고 그 증인으로 전도자의 삶을 살고자 노력하고 있다

하나님께서 다락방 전도운동을 도구로 사용하셔서 한사람의 인생과, 한 가문을 복음가문으로 변화시킨 것에 나는 지극히 작은  증인에 불과하다. 무수히 많은 증인들이 다락방을 사랑한다.

다락방전도운동은 평생토록 내게 각골난망(刻骨難忘) ”의  은혜이다. / 장로 윤광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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