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관 앞 너구리가 머물다 간 자리

수필기고: 캐나다 주재식 선교사

2026-02-07 13:04:41  인쇄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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캐나다의 매서운 겨울은 모든 생명을 움츠러들게 한다.

숨을 들이마실 때마다 공기마저 폐부를 찌르는 칼날이 되는 계절, 눈 덮인 대지는 살아있는 것들에게 유난히 가혹하다.

어느 꼭두새벽, 정적을 깨고 집 보안 카메라의 경보음이 울렸다. 잠결에 확인한 화면 속에는 예상치 못한 손님이 와 있었다.


꼬리에 색동저고리 소매 같은 무늬를 두른 너구리 한 마리였다. 녀석은 까만 얼굴의 주둥이를 제 배에 깊숙이 파묻은 채 현관문 바로 앞에 몸을 웅크리고 있었다. 먹잇감을 찾아 밤새 눈밭을 헤매다 지친 것일까, 아니면 본능적으로 사람의 온기가 남은 이곳을 안전한 요새로 여긴 것일까. 카메라의 희미한 불빛과 기계적인 소음에도 너구리는 좀처럼 움직이지 않았다. 그 모습은 마치 이 자리만큼은 누구에게도 위협받지 않을 '허락된 쉼터'라고 굳게 믿는 듯했다.

 

그 장면을 오래도록 바라보며, 문득 갈망하는 것들을 찾아 떠도는 우리의 삶을 떠올렸다.

 

우리는 더 나은 내일, 더 풍요로운 안식처를 꿈꾸며 쉼 없이 움직인다. 하지만 정작 마음을 내려놓을 자리를 찾지 못한 채 방황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무언가를 붙들기 위해 애써 달려온 시간들이었으나, 실은 온전히 붙들릴 곳을 찾지 못해 헤매던 허허로운 발걸음이었는지도 모른다. 얻지 못한 허탈감 앞에서 주저앉은 우리의 영혼은, 차가운 현관 앞에 몸을 맡긴 저 너구리의 뒷모습과 닮아 있었다.

 

어쩌면 지금은 자신의 힘으로는 더 나아갈 수 없음을 인정해야 할 때인지도 모른다. 죄로 인해 상처 입고 소망을 잃은 채 떠도는 영혼이 과연 어디서 참된 안식을 얻을 수 있겠는가. 세상은 끊임없이 '더 가지라'며 등을 떠밀지만, 정작 우리가 아무 걱정 없이 웅크려 쉬어도 되는 자리는 좀처럼 허락하지 않는다.

 

질문은 깊어지지만 답은 이미 곁에 있었다.

우리 곁에 이미 와 계시며, 생명을 내어주기까지 영원한 쉼을 허락하시는 분, 하나님이시다. 거창한 해답을 찾으려 애쓰기보다, 지금 이 순간 나를 감싸고 있는 그분의 임재를 알아보는 눈이 다시 열리기를 소망해 본다.

 

현관 앞에 잠시 머물다 떠났을 그 너구리처럼, 나 또한 여전히 참된 쉼을 찾아가는 연약한 존재임을 고백한다. 일상의 작은 틈을 통해 나를 비추시고, 이 땅에서 나그네 된 삶을 조용히 살아내게 하시는 하나님의 부르심에 오늘도 감사가 머문다. /

글 주재식 선교사(세계 순회 의료복음선교사 / 한의사 / 대한예수교장로회 총회(개혁총연) 캐나다 노회 파송 선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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