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크 세이어스의 기둥 이론으로 본 전도운동의 본질과 과제

‘인물 기둥’을 넘어 ‘오직 복음’의 절대 기둥으로

2026-06-14 23:42:47  인쇄하기


81qw0xYn-PL._AC_UF1000,1000_QL80_.jpg

최근 정현국 목사께서 두기고 TIMES’를 통해 사회심리학의 권력 이론과 문화 분석가 마크 세이어스(Mark Sayers)의 저서 Platforms to Pillars를 인용하며 류광수 목사의 지도력을 분석한 칼럼을 게재했다. 해당 칼럼은 화려한 세상의 플랫폼과 대비되는 조용하고 굳건한 기둥의 가치를 빌려, 다락방 전도운동이 외부의 핍박 속에서도 자발적 동조를 유지해 온 배경을 신선하게 짚어냈다. 해당 칼럼은 필자의 깊은 학식과 필력 내공을 보여주는 감동적인 칼럼임에 틀림없다.

그럼에도 이 학술 이론을 다락방전도운동에 그대로 투영하기에는 무엇인가 다소 아쉬운 부분이 존재한다. 물론 본 칼럼이 주장하는 바가 정현국 목사님의 칼럼과 크게 다르지 않겠지만 필자의 비평적 시각으로 감히 마크 세이어스의 기둥이론 그 이면을 다시 들여다보고자 한다.

기둥 이론이 가진 인본주의적 한계

마크 세이어스의 기둥 이론은 현대 교회의 대형화와 인플루언서 문화를 비판했다는 점에서 유용해 보이지만, 본질적으로는 리더의 인격(Character), 관계적 신뢰, 일관성 등 인간적 역량에 주목하는 인본주의적 리더십 이론에 불과하다. 정목사님의 칼럼은 류 목사님을 벧엘의 야곱이 세운 기둥에 비유하며 그의 지도력을 평가했으나, 성경은 단 한 번도 인간을 완전한 기둥으로 제시한 적이 없다.

인간 리더를 기둥으로 삼는 리더십론은 결국 리더의 도덕적 흠결이나 조직의 소소한 문제가 불거질 때 사상누각처럼 흔들리는 치명적인 약점을 안고 있다.

칼럼 스스로도 인정하듯 육신적인 매력이나 흠모할 만한 능력이 기준이 된다면, 이는 또 다른 형태의 인본주의적 신격화나 개인숭배로 귀결될 위험이 있다.

성도들이 움직인 유일한 동력: 오직 성경적 복음

그렇다면 기존 교단의 강력한 규제와 따돌림이라는 불이익 속에서도 목회자들과 성도들이 자발적으로 이 흐름을 지속해 온 진짜 동력은 무엇인가? 그것은 마크 세이어스가 말한 인간적 기둥의 매력 때문이 아니다그들이 목숨을 걸고 양심적 선택을 내린 이유는 오직 하나, 류광수 목사가 강단에서 선포한 메시지가 성경이 제시하는 복음의 유일성(창세기 3장 문제와 오직 그리스도)과 정확히 일치한다는 성경적 사실성을 확인했기 때문이다.

성도들이 반응한 것은 인간 류광수의 리더십 뿐만이 아니라, 그를 통해 전달된 하나님의 절대적인 말씀이었다. , 이 전도운동을 지탱해 온 진짜 기둥은 인간 지도자가 아니라 오직 성경적 복음그 자체였다.

플랫폼의 유혹과 전도자의 정체성

초창기 다락방 전도운동은 기득권이라는 화려한 플랫폼을 버리고, 오직 성경적 전도운동이라는 좁고 굳건한 복음의 길을 걸었다. 전도가 방해 받는다면 총회도 해산하겠다는 결연한 다짐이 있었다.  그러므로 오늘날 이 운동이 본질인 복음운동보다 세계 복음화의 조직이나 사역 플랫폼을 유지하는 데 집착하고 있지는 않은지 항상 경계해야 한다.

소소한 잡음과 상존하는 문제들은 인간 지도자나 조직이라는 플랫폼을 바라볼 때 시험거리가 된다. 그러나 우리가 바라보는 대상이 인간 기둥이 아닌 오직 성경적 복음이라면, 그 어떤 흔들림도 걸림돌이 될 수 없다.

결론적으로 류광수 목사의 지도력이 지닌 유일한 당위성은 그가 '성경적인 복음의 본질'을 가감 없이 선포했다는 점에만 존재한다.

시대의 언약 흐름을 찾은 전도자들은 인간을 추앙하는 자들이 아니다. 오늘날 우리가 추구해야 할 동질화(Identity)는 세속적 이론이 말하는 인본주의적 기둥이 아닌, 요한계시록 312절의 약속처럼 하나님 성전의 절대적인 복음 기둥으로서 굳건히 서는 것이다./ 윤광식 기자 

다음글 | [신앙과 삶] 하나님은 왜 ‘우리아의 아내’로 기록했을까?

목록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