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음칼럼] ‘로컬(Local)’과 ‘파라(Para)’

베드로와 바울, 그 거룩한 긴장과 연대

2026-09-22 14:39:46  인쇄하기


2997_7090_5048.jpg

 

예루살렘 공의회(AD 49)

오늘날 현대 목회 현장과 선교지에서 끊이지 않고 분출되는 질문이 있습니다. “개교회 중심의 목회(Local)가 우선인가, 아니면 국경과 문화를 뛰어넘는 초교회적 선교(Para)가 우선인가?” 조직을 관리하고 양떼를 지키는 일과, 끊임없이 경계를 넘어 새로운 영역을 개척하는 일은 종종 교회 안에서 긴장 관계를 형성하곤 합니다.

그러나 이 오래된 긴장은 현대만의 고민이 아닙니다. 교회의 시작점이었던 초대교회, 그 중심에는 로컬의 수장 베드로와 파라의 개척자 바울이 있었습니다. 두 거인의 발자취를 통해 오늘날 우리가 마주한 로컬과 파라의 갈등을 풀어낼 신학적 실마리를 찾아봅니다.

로컬의 수장 베드로, 파라의 야전사령관 바울

초대교회라는 거대한 건물을 떠받친 두 기둥은 전혀 다른 현장에서 사역했습니다.

베드로는 예수님께 직접 수수 받은 권위(16:18)를 바탕으로 예루살렘 모교회의 중심축 역할을 했습니다. 그는 할례파, 즉 유대교적 전통과 질서를 존중하며 기존 공동체의 신앙적 정체성을 공고히 하고 내부를 결속하는 사역에 집중했습니다. 양들을 먹이고 조직을 관리하는 로컬 목회의 전형입니다.

반면 바울은 다메섹 도상에서 부름을 받은 후, 기존 질서의 울타리 밖으로 내달렸습니다. 그는 이방인의 사도로서 문화적·지리적 경계를 허물며 소아시아와 유럽을 무대로 활동했습니다. 고정된 구조에 얽매이지 않고 유연하게 움직이는 현대의 파라 선교 단체네트워크 사역의 원형이라 할 수 있습니다.

역사적 변곡점: 예루살렘 공의회(AD 49)의 결의

두 사람의 사역 방식과 신학적 관점은 필연적으로 충돌했습니다. 이방인 그리스도인에게 유대인의 율법(할례)을 강요할 것인가의 문제로 안디옥 교회에서 격렬한 논쟁이 붙었고, 이는 교회의 운명을 가를 갈림길이 되었습니다. 여기서 주목할 교회사적 근거가 바로 예루살렘 공의회(15)입니다. 이 공의회는 로컬(예루살렘 교회)과 파라(바울의 선교팀)가 어떻게 상호작용해야 하는지 보여주는 최고의 모범 사례입니다.

상호 존중과 경청:로컬의 리더였던 베드로와 야고보는 바울이 이방 땅에서 행한 파라 사역의 열매를 폄하하지 않고 경청했습니다. 베드로는 "하나님이 우리에게와 같이 그들에게도 성령을 주어 증언하시고... 믿음으로 그들의 마음을 깨끗이 하사"(15:8-9)라며 바울의 손을 들어 주었습니다.

지혜로운 공존의 결의:공의회는 이방인에게 율법의 무거운 짐을 지우지 않되, 우상의 더러운 것과 음행, 목매어 죽인 것과 피를 멀리하라는 최소한의 지침만 결의했습니다. 이는 파라의 자율성과 선교적 유연성을 전폭적으로 인정하면서도, 로컬 교회가 지켜온 거룩성의 본질을 훼손하지 않는 완벽한 타협이자 연대였습니다.

신학자들의 시선: 베드로적 교회와 바울적 교회의 변증법

20세기 최고의 가톨릭 신학자 한스 큉(Hans Küng)은 그의 저서 교회(The Church)에서 교회의 본질을 설명하며 베드로적 구조(제도, 질서, 카리스마의 구조화)와 바울적 구조(자유, 은사, 역동성)가 끊임없이 상호작용해야 함을 강조했습니다. 한스 큉에 따르면, 베드로 없는 바울은 무질서와 분열로 치닫기 쉽고, 바울 없는 베드로는 교조주의와 영적 정체(Stagnation)에 빠지게 됩니다.

또한 개신교 신학자 위르겐 몰트만(Jürgen Moltmann) 역시 교회의 선교적 본질을 다루며, 교회가 세상으로 나아가기 위해서는(바울적 파라 사역) 반드시 영적 고향이자 기초가 되는 공동체(베드로적 로컬 사역)가 든든히 서 있어야 함을 주장했습니다. , 신학적으로 두 사람은 대립 관계가 아니라 교회를 교회답게 만드는 거룩한 긴장 관계(Creative Tension)에 있었던 것입니다. 갈라디아서 2장에서 바울이 외식하는 베드로를 혹독하게 책망한 사건(안디옥 사건)이 있었음에도, 훗날 베드로는 서신서에서 바울을 "우리 사랑하는 형제 바울"(베드로후서 3:15)이라고 부르며 그의 사도성을 신뢰했습니다. 본질 안에서 하나였기에 가능한 성숙함이었습니다.

로컬과 파라, 대립을 넘어 상생의 생태계

오늘날 우리는 종종 로컬(교단)이 파라(선교단체)를 하부 구조나 후원 대상으로만 여기거나, 반대로 파라가 로컬을 보수적이고 답답한 조직으로 치부하거나 로컬이 파라를 따라야 하는 것 같은 오류를 범합니다.

그러나 베드로와 바울이 보여준 초대교회의 DNA는 전혀 다릅니다.

로컬은 파라의 모태이자 영적 고향입니다. 안정적인 베드로적 로컬 교회가 기도와 재정, 그리고 영성으로 받쳐주지 않는다면, 바울적 파라 선교는 지속 가능성을 잃고 고립될 수 있습니다.

파라는 로컬의 확장이며 안테나입니다. 변화무쌍한 현대 사회에서 로컬 교회가 미처 닿지 못하는 영역(캠퍼스, 일터, 문화 예술계, 소외 계층237나라 해외선교,미전도종족)으로 침투하는 파라 사역은, 안주하려는 로컬 교회에 끊임없이 신선한 영적 자극과 선교적 야성을 불어넣어 줍니다.

결국

결국 로컬의 복음적인 신학적 정체성을 기반으로 한 제도적 교회의 든든한 배경 속에 파라의 선교적 야성이 만날 때 현대 교회는 비로소 온전해집니다. 로컬의 질서 위에 파라의 자유함이 춤추고, 파라의 역동성이 로컬의 무릎 위에 뿌리내리는 것. 그것이 바로 예루살렘 공의회가 우리에게 물려준 유산이자, 이 시대 교회가 회복해야 할 거룩한 상생의 생태계입니다./ 발행인 윤광식

다음글 | [기자의 눈] 예장총회, 총무활동량 논란에 대하여

목록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