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칼럼] 역사왜곡과 창작의 자유, 그 위험한 경계선에 선 영화 <암살자들>

비극적 가족 잔혹사를 상업적으로 소비하는 잔인한 예술도 존중받아야 하나

2026-09-30 18:19:23  인쇄하기


2026093090121_0.png

▴영화 '암살자(들)' 공식포스터. / 하이브미디어코프

창작예술은 허구를 허용하지만, 그 허구가 생존하는 유족의 고통을 무기 삼아 진실을 난도질할 때 비평은 침묵할 수 없습니다. 최근 고(故) 육영수 여사 시해 사건을 다룬 영화 <암살자(들)>을 둘러싼 논란은 단순히 '창작의 자유'라는 방패막이로 넘기기에는 그 한계선을 한참 넘어섰습니다. 본 칼럼은 이 영화가 지닌 치명적인 역사 왜곡과 윤리적 타락을 비평적으로 고발하고자 합니다.

검증된 팩트를 지우고 들어선 교활한 음모론의 실체

영화 <암살자(들)>은 세간에 떠돌던 정권 기획설, 이른바 '자작극 의혹'을 교묘하게 연출하며 사실과 픽션의 경계를 무너뜨립니다. 영화는 제목의 '(들)'이라는 글자나 결말 자막을 통해 마치 권력 내부의 또 다른 배후나 저격수가 있었던 것처럼 암시하지만, 이는 음모론일 뿐 역사적 사실이 아닙니다.

사건 당시 대한민국 수사본부는 물론, 일본 사법당국과 미국 대사관의 비밀 전문 어디에서도 '정권 기획설'의 근거는 찾아볼 수 없습니다. 한국 수사당국은 문세광이 조총련의 지령을 받아 범행을 모의했다고 결론 내렸고, 당시 한국의 수사권을 인정하지 않으려 했던 일본 경찰조차도 철저한 조사를 통해 문세광이 일본 파출소에서 권총을 훔쳐 밀입국한 단독 범행이라는 점을 공식 확인했습니다.

영화적 재미를 위해 의혹을 부풀린 '경호원 오발설'이나 '총성 횟수 논란' 역시 본질을 흐리는 선동에 불과합니다. 당시 현장 수사 기록과 재판 결과는 범인 문세광이 박정희 대통령을 암살하려는 명백한 목적(내란목적살인 등)을 가지고 흉탄을 발사했음을 공고히 증명하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영화는 이 모든 법적·역사적 팩트를 '음모'라는 스펙터클 아래 묻어버렸습니다.

북한식 선전 시나리오와의 소름 돋는 유사성

가장 우려스러운 지점은 이 영화가 그려내는 음모론의 궤적이 과거 북한이 대남 선전 공작을 위해 유포했던 조작설 및 선전 영화들의 논리와 기괴할 정도로 닮아있다는 점입니다.

문세광에 의한 저격이라는 명백한 팩트를 뒤흔들며, 독재 체제 유지를 위해 국가 권력이 시해를 기획했다는 식으로 몰아가는 서사 구조는 북한 정권이 자신들의 만행을 은폐하기 위해 주장해 온 선전 선동의 논리를 고스란히 답습하는 꼴입니다.

대한민국 정부의 정통성을 흔들기 위해 기획되었던 과거 북한식 프로파간다(선전선동)가 21세기 대한민국 극장가에서 '창작의 자유'라는 세련된 옷을 입고 부활한 것에 대해, 감독은 과연 사상적·역사적 책임감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는지 묻지 않을 수 없습니다.

비극적 가족 잔혹사를 상업적으로 소비하는 잔인한 시선

창작의 자유는 인간 존엄성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를 전제로 합니다. 육영수 여사 시해 사건은 대한민국 현대사의 거대한 비극이자, 동시에 한 가족의 어머니가 백주대낮에 저격당한 잔혹한 참사입니다.

현재 이 비극을 온몸으로 겪어낸 유족들이 엄연히 생존해 있습니다. 역사적 인물이라는 이유만으로 사적 비극을 자극적인 허구의 서사로 재단하는 것은 유족의 가슴에 또다시 대못을 박는 고문이나 다름없습니다.

영화는 '드라마틱한 서사'라는 미명 하에 한 인간의 참혹한 죽음과 가족사를 상업적으로 소비하며 메가폰의 독선적 욕망을 채우는 데 급급해 보입니다.

'창작의 자유'는 역사 조작의 면죄부가 아니다

모든 예술적 상상력은 역사적 개연성과 인간에 대한 리얼리티 위에 존재해야 합니다.

대중 예술은 역사적 사실을 깊게 각인시키는 힘이 있습니다. 사실 관계를 고의적으로 뒤틀어버린 팩션(Faction)은 대중에게 왜곡된 인식을 심어주며 역사적 기억을 조염시킵니다. 수면 아래에 머물던 음모론을 대중 소비재로 끌어올린 감독의 행위는 사회적 분열과 반지성주의를 조장할 뿐입니다.

감독은 창작의 자유를 외치기 전에, 자신의 카메라가 역사의 칼날이 되어 누군가를 부당하게 찌르고 있지는 않은지 성찰했어야 합니다. 성찰 없는 자유는 예술이 아니라 권력에 대한 폭력이자 방종일 뿐입니다.

 

결론적으로, 영화 <암살자들>은 역사의 공백을 메우는 예술적 상상력이 아니라, 엄연한 사실을 무너뜨리는 악의적인 변주에 가깝습니다.유족의 피눈물과 북한식 프로파간다의 그림자, 그리고 근거 없는 음모론 위에서 피어난 창작은 결코 아름다울 수 없습니다. 역사와 인간에 대한 최소한의 경외심마저 저버린 감독의 무책임한 연출은 비평적인 준엄한 심판을 면치 못할 것입니다./ 발행인 윤광식

다음글 | [복음 칼럼] 닮은 듯 다른 추석명절과 초막절

목록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