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눈이 펑펑 내리는 광장에서 예배드리는 쇼망(守望)교회 성도들
21세기 대륙의 심장부, 첨단 기술과 권력이 교차하는 베이징 중관춘(中关村)의 한 광장에서 벌어진 사건은 현대 기독교 수난사의 거대한 이정표였다. 1993년 칭화대 출신의 엘리트 진톈밍 목사 부부의 아파트 거실에서 작은 가정 모임으로 출발했던 쇼망(守望, 파수꾼)교회. 이들은 2000년대 중국의 급격한 경제 성장과 함께 대학생, 교수, 변호사, IT 엔지니어 등 대륙 최고의 지성인들이 대거 유입되며 등록 교인 1,000명이 넘는 거대한 ‘도시형 가정교회’의 영적 거성으로 우뚝 섰다.
그러나 이들의 성장은 중국 공산당 정권에 통제 불가능한 정치적 위협으로 다가왔다. 교회의 대형화와 영향력을 두려워한 당국은 관제 종교 기구인 ‘삼자애국운동’ 산하로 들어올 것을 종용했으나, “교회의 머리는 오직 예수 그리스도뿐”이라는 쇼망교회의 신앙고백 앞에 정면으로 부딪혔다.
정부는 이들을 불법 단체로 규정했고, 성도들이 헌금을 모아 매입한 예배당 건물의 등기 발급을 막았으며, 기존 임대 처소마저 강제로 폐쇄했다.
갈 곳이 없어진 쇼망교회가 선택한 것은 ‘광장’이었다. 2009년 11월 1일, 폭설이 내리는 베이징 중관춘 광장 바닥에 스티로폼을 깔고 감행한 첫 노천 예배는 전 세계 언론에 타전되며 웅장한 신앙적 선포가 되었다.

▴야외에서 주일예배를 드리는 진톈밍 목사와 쇼망교회 성도들(사진: ChinaAid 캡처)
이 얼어붙은 광장 위에서 역사에 남을 감동적인 전언이 피어났다. 매서운 칼바람과 폭설 속에서 공안들이 예배를 드리는 성도들을 거칠게 잡아끌며 버스에 강제로 태우기 시작했다. 그때 연행되던 한 청년 성도가 차가운 철창 버스 안에서 창문을 열고 광장에 남겨진 성도들을 향해 소리쳤다.
"형제자매 여러분, 낙심하지 마십시오! 우리는 지금 감옥으로 가는 버스를 탄 것이 아닙니다. 우리는 하늘나라로 가는 가장 영광스러운 마차를 탄 것입니다!"
이 외침에 광장에 서 있던 성도들은 눈물을 흘리며 전심으로 찬양을 부르기 시작했고, 공안들은 그 영적 기백에 눌려 감히 소리를 지르지 못했다.
정부의 보복은 잔인했다. 2011년 4월, 중동의 ‘아랍의 봄’ 여파로 체제 불안을 느낀 정권은 진톈밍 목사를 비롯한 지도부 전원을 가택 연금했고, 매주 광장으로 나오는 성도들을 버스로 강제 연행했다. 직장 해고, 퇴학 경고, 아파트 임대 계약 강제 해지 등 일상 전체를 마비시키는 전방위적 탄압 속에 쇼망교회는 결국 지상에서 완전히 폐쇄되었다.
그로부터 수년이 흐른 지금, 쇼망교회의 생명력은 꺾였는가? 결코 아니다. 이들은 대규모 모임을 포기하는 대신 베이징 전역에 3~5명 단위의 초소형 세포 교회(Micro Church)로 파편화되어 가정과 카페, 일터로 깊숙이 숨어들었다. 안면 인식 CCTV와 인터넷 검열이라는 거대한 디지털 통제망을 피해 암호화 메신저와 VPN으로 소통하며, 여전히 숨죽여 대륙의 심장부를 기도로 깨우고 있다.
쇼망교회 사건은 전 세계 선교계에 거대한 패러다임의 시프트를 요구했다. 이제 독재 체제 아래서 외형적 대형화와 건물의 합법성 쟁취는 교회의 소멸을 자초하는 표적이 될 뿐이라는 비극적 교훈을 남겼다.
이 사건은 결국 2018년 중국의 ‘신종교사무조례’ 개정과 종교 통제의 도화선이 되었고, 현대 선교를 ‘모이면 죽고 흩어지면 사는’ 일터 비즈니스 선교(BAM)와 세포형 카타콤 구조로 완전히 체질 개선하게 만들었다. 건물의 십자가는 꺾였을지라도, 대륙의 지하로 흘러든 복음의 생명력은 더욱 순결하고 단단해진 채 흐르고 있다./ 윤광식 기자(kidokilbo@daum.net)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