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멜리토폴 그레이스 교회의 2022년 9월 11일 예배 실황 영상에서 포착된 장면. 러시아 점령군이 예배를 방해하고 있다./ 순교자의 소리 제공
러시아와 우크라이나의 전면전은 2022년 2월 24일 새벽에 시작되었다. 2022년 2월 전면 침공 이후 러시아군이 점령지를 대폭 확대했고, 같은 해 9월 30일 도네츠크, 루한스크, 자포리자, 헤르손 지역을 통째로 러시아 연방에 병합한다고 선언했다. 러시아가 점령한 우크라이나 일부 지역에서 기독교 지도자들이 살해·고문·실종되고 있다.
수년째 이어지는 가혹한 전쟁의 그늘 속에서, 러시아 점령 당국과 친러 분리주의 세력은 러시아 정교회가 아닌 침례교, 오순절교 등 모든 복음주의 개신교회들을 ‘외국 스파이 기구’ 및 ‘체제 전복 세력’으로 규정하고 전방위적인 교단 도륙과 성전 몰수, 목회자와 성도 납치, 고문, 살해 사태가 자행되고 있어 국제 사회의 엄중한 경종을 울리고 있다.
탄압의 명분은 철저히 정치적 이념 체제와 종교 민족주의의 결합이었다. 러시아 점령 당국은 복음주의 개신교가 미국`과 서방의 배후 조종을 받는다며 법적 지위를 전면 박탈했다. 2023~2024년을 기점으로 자포리자주 멜리토폴과 도네츠크주 마리우폴 등 주요 점령 도시의 대형 개신교 예배당들이 일제히 무력으로 군대에 접수되었다. 점령군은 성도들을 총칼로 쫓아낸 뒤 예배당 건물을 러시아군 병영, 행정 사무실, 혹은 친러 단체의 집회소로 강제 전환(몰수)했다. 특히 2024년 2월, 자포리자주 안토니우카 지역에서는 수십 년간 헌신해 온 침례교 목회자가 성도들과 예배를 드리던 중 복면을 쓴 러시아 정보기관(FSB) 요원들에게 강제 납치되어 소식이 두절되는 등, 점령지 내 개신교 사역자들을 향한 ‘백색 테러’가 극에 달했다.
이어 2025년까지 점령지 내 수백 개의 개신교 처소가 물리적으로 와해당하며 복음주의 교회는 지상에서 완전히 지워진 채 철저한 장막 뒤로 숨어들어야 했다.
그러나 총성과 포연이 가득한 절망의 땅에서, 개신교 성도들은 십자가의 진정한 가치를 삶과 증언으로 채워간 상징적 일화를 역사에 새겼다. 러시아군의 폭격과 감시가 극에 달했던 도네츠크주 외곽의 한 침례교회. 예배당 건물을 점령군 병영으로 빼앗긴 성도들은 폭격을 피해 무너진 건물의 지하 방공호(지하실)로 숨어들었다. 전기가 끊겨 촛불 하나에 의지한 채 성도들이 숨죽여 눈물로 기도하던 주일 아침, 무장한 군인들이 지하실 문을 부수고 들이닥쳤다. 군인들은 성도들을 벽에 세우고 소총을 겨누며 성경책들을 바닥에 던져 군화발로 짓밟았다. 그때 한 젊은 개신교 사역자가 앞으로 나아가 군인의 총구를 자신의 가슴에 대며 나직하지만 단호한 목소리로 말했다.
"지휘관이여, 당신들이 우리의 대리석 예배당을 빼앗아 군사 기지로 쓸 수는 있습니다. 우리의 종이 성경을 찢어 불태울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보십시오. 우리의 심장 매 세포마다 깊이 새겨진 하나님의 말씀과 십자가의 사랑은 당신들의 총칼로도 결코 몰수할 수 없습니다.“
격분한 군인들은 전도사를 거칠게 지하 거실 밖으로 끌고 가 연행했고, 그는 끝내 돌아오지 못하는 순교의 제물이 되었다. 하지만 남아있는 성도들은 사지가 떨리는 공포 속에서도 전도사가 흘린 핏자국이 묻은 바닥의 성경 조각들을 소중히 거두어 품에 안았다. 그날 이후 점령지의 성도들은 서로의 집 지하실을 암호로 공유하며, 피로 새겨진 말씀을 암송하는 강력한 ‘카타콤 게릴라 예배’를 멈추지 않고 있다.
2026년 현재, 러시아 점령지 내의 복음주의 개신교회들은 완벽한 지하 카타콤 체제로 전환되었다. 당국의 철저한 통신 감시를 피해 성도들은 어떠한 디지털 기기도 사용하지 않은 채 오직 구전과 은밀한 인편으로만 모임 장소를 연락하며 신앙의 정절을 지키고 있다.

▴ 우크라이나 성도의 기도하는 모습
러시아 점령지 내의 개신교 몰수 사건은 현대 교회를 향해 엄중한 예언자적 경고를 던진다. 종교가 국가 권력의 시녀가 되고 정치적 이념의 무기가 될 때, 순수한 복음주의 교회는 가장 잔인한 핍박의 표적이 될 수 있다. 그러나 포연 가득한 지하 방공호에서 피어난 유라시아의 카타콤 예배는, 교회의 참된 권세는 화려한 외형이나 정치적 보호막에 있는 것이 아니라 어떤 죽음의 위협 속에서도 그리스도를 주라 고백하는 순결한 십자가의 야성에 있음을 온 천하에 웅변하고 있다./ 윤광식 기자(kidokilbo@daum.net)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