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해발 800m에 있는 발도파의 옛 신학교
1. 발생의 근원: 1170년경 리옹의 부유한 상인, 복음의 벌거벗은 순례자가 되다.
12세기 후반, 프랑스 남부의 상업 도시 리옹은 풍요와 탐욕이 교차하는 곳이었습니다. 그곳에서 막대한 부를 쌓았던 성공한 상인 피에르 발도(Pierre Waldo, 1140~1205)는 어느 날 함께 음식을 먹던 동료가 갑작스럽게 급사하는 모습을 목격하며 깊은 영적 충격에 빠집니다. 절망 속에서 구원의 길을 찾던 그는 마태복음 19장 21절의 말씀, 즉 *“네 소유를 팔아 가난한 자들에게 주라 그리하면 하늘에서 보화가 네게 있으리라 그리고 와서 나를 따르라”*는 예수의 음성을 심장으로 받아들였습니다. 그 길로 발도는 자신의 모든 재산을 가난한 이들에게 미련 없이 나누어 주었습니다. 그리고 당시 지배 계급의 언어였던 라틴어가 아닌, 대중들이 이해할 수 있는 자국어(지방어)로 복음서를 번역하는 일에 전념했습니다. 성경을 손에 든 그는 ‘리옹의 가난한 사람들’이라는 공동체를 결성하고, 신발도 신지 않은 채 두 명씩 짝을 지어 거리와 마을을 누비며 순회 전도를 시작했습니다. 이는 제도화되고 부패했던 중세 가톨릭교회의 심장부를 뒤흔든, 오직 말씀대로만 살고자 했던 청빈 운동의 고결한 서막이었습니다.
2. 역사적 발자취: 십자군의 칼날과 알프스의 눈물
당시 가톨릭교회는 평신도가 성경을 읽고 설교하는 것을 엄격히 금지했습니다. 교황청의 경고에도 불구하고 발도파가 “우리는 사람보다 하나님께 순종해야 한다”며 전도를 멈추지 않자, 1184년 베로나 공의회는 이들을 공식적으로 이단으로 규정하고 파문했습니다. 이때부터 인류 역사상 가장 잔혹하고 질긴 박해의 배가 닻을 올렸습니다. 프랑스 평원에서 쫓겨난 발도파 교도들은 살아남기 위해 프랑스와 이탈리아의 국경을 이루는 험준한 알프스 피에몬테(Piedmont) 산악 골짜기로 숨어들었습니다. 그곳에서 이들은 깎아지른 절벽에 동굴을 파고, 밤마다 촛불 아래에서 성경 구절을 통째로 암송하며 신앙을 이어갔습니다. 중세 교황청은 이들을 절멸시키기 위해 군대를 동원한 ‘발도파 십자군’을 무려 수차례나 파견했습니다. 특히 1655년 유월절에 자행된 ‘피에몬테의 부활절 학살’은 참혹함의 극치였습니다. 군인들은 바위 절벽 위에서 발도파의 어린아이들을 던지고, 여인들의 몸을 찢으며 계곡을 피로 물들였습니다. 영국의 시인 존 밀턴은 이 비극을 보며 *“오 주여, 살육당한 당신의 성도들의 원한을 갚으소서, 그들의 뼈가 차가운 알프스 산자락에 흩어져 있나이다”*라는 시를 지어 통곡했습니다.
그러나 발도파는 꺾이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칼을 잡는 대신 기도를 택했고, 겨울의 눈보라보다 차가운 칼날을 신앙의 끈기로 버텨냈습니다. 마침내 1532년, 이들은 종교개혁의 소식을 듣고 스위스의 개혁자들과 만나 샹포랑(Chanforan) 회의를 개최하여 주류 칼빈주의 개혁교회 진영과 역사적인 신학적 통합을 이루며 지하에서 지상으로 걸어 나왔습니다.
3. 교리적 특징: 종교개혁을 잉태한 소박하고 투명한 진리
발도파의 교리는 복잡한 신학적 논쟁이 아닌, 복음서의 가르침을 문자 그대로 삶에 투영하는 ‘소박한 성경주의’였습니다.
성경의 절대적 권위 (Sola Scriptura): 교황의 교서나 공의회의 결정보다 성경 말씀이 최종적인 권위를 가짐을 천명했습니다.
만인제사장과 평신도 설교:신학을 전공한 사제뿐만 아니라, 말씀을 깨달은 남녀노소 누반의 평신도 모두가 복음을 전할 권리와 의무가 있다고 믿었습니다.
중세 가톨릭 성례 거부:성경적 근거가 없는 연옥설, 죽은 자를 위한 기도, 면죄부 판매, 성상 숭배를 전면 거부했습니다.
산상수훈의 실천:거짓말을 엄격히 금지했기에 어떤 상황에서도 선서를 거부했으며, 그리스도의 평화주의를 따라 사형 제도와 무력 사용을 반대했습니다.
4. 개신교의 신학적 평가: 종교개혁의 거룩한 마중물이자 새벽별
현대 개신교 신학계는 발도파를 ‘종교개혁이 일어나기 전의 종교개혁가들(Reformers before the Reformation)’로 부르며 최고의 경의를 표합니다. 마틴 루터가 비텐베르크 성당 문에 95개조 반박문을 붙이기 훨씬 전, 장 칼뱅이 제네바에서 기독교 강요를 집필하기 전부터 발도파는 이미 개신교 신학의 핵심 뼈대인 ‘오직 성경’, ‘오직 은혜’의 삶을 몸소 살아내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주류 교회가 부패하여 복음의 빛을 잃었을 때, 유럽의 가장 어둡고 높은 곳인 알프스 산맥에서 참된 교회의 맥을 이어준 거룩한 보존자이자 마중물로 평가받습니다.
5. 복음적인 접근 전략: 영적 상처를 덮는 ‘장자(長子)교회’를 향한 위로
발도파는 850년이 넘는 세월 동안 생존해 오며 이탈리아 북부에 약 3만 명의 교세를 가진 '발도파-감리교 연합교회'로 당당히 자리 잡고 있습니다. 그러나 오랜 세월 박해와 변방의 소수파로 살아오면서, 현대의 발도파는 과거의 뜨거웠던 복음주의적 영성보다는 사회 정의 운동이나 에큐메니칼(교회일치) 운동 등 자유주의적 성향으로 치우쳐 영적 침체를 겪고 있는 면이 존재합니다.
상처 입은 치유자로서의 연대:이들에게 접근할 때 복음을 가르치려는 태도는 금물입니다. 도리어 그들이 흘린 순교의 피가 있었기에 오늘날의 개신교가 존재할 수 있었음을 인정하는 ‘영적 빚진 자의 마음’으로 다가가야 합니다. 그들의 뼈아픈 박해의 역사를 깊이 공감하고 위로할 때 닫힌 마음이 열립니다.
영적 야성의 회복을 위한 동역:그들이 가진 위대한 복음적 유산, 즉 ‘성경을 목숨보다 사랑했던 열정’을 다시 일깨우는 영적 각성 세미나와 연합 기도회를 제안해야 합니다. 과거 피에르 발도가 외쳤던 말씀의 능력을 현대 이탈리아의 세속화된 영성 속에 재점화 할 수 있도록 동역자로서 서포트해야 합니다.
차세대 복음 리더십 양성 지원:발도파 청년들이 과거 조상들의 순교적 신앙에 자부심을 느끼고, 현대 유럽의 영적 황무지를 일구는 전도자로 일어설 수 있도록 신학 교육 교류 및 선교 장학 프로그램을 제공하여 영적 장자교회로서의 사명을 환기시켜야 합니다./ 발행인 윤광식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