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메노나이트교회 예배 장면
1. 발생의 근원: 가톨릭의 사제, 맹목적인 칼을 버리고 참된 침례를 고수하다
1536년, 네덜란드의 가톨릭 사제였던 메노 시몬스(Menno Simons, 1496~1561)는 극심한 영적 고뇌에 빠져 있었습니다. 당시 유럽은 종교개혁의 불길 속에서 유아세례를 부정하고 성경 중심의 급진적 개혁을 부르짖던 재침례파들이 멧돌에 묶여 강물에 던져지고 화형을 당하는 피의 학살이 자행되던 때였습니다. 메노 시몬스는 자신의 친형제를 포함한 수많은 재침례파 성도들이 오직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려다 참혹하게 죽어가는 모습을 보며 사제직을 내려놓았습니다. 그는 성경을 깊이 연구한 끝에, 교회가 국가 권력과 결탁하여 군대를 동원하고 억지로 신앙을 강요하는 것은 그리스도의 법이 아니라고 확신했습니다. 그는 지하로 숨어들어 흩어진 재침례파 성도들을 모으고 신학적 체계를 세웠습니다. 과격하고 폭력적이었던 일부 재침례파 분파들과 철저히 선을 긋고, 오직 성경과 그리스도의 평화주의, 그리고 사랑의 실천을 교회의 초석으로 삼았습니다. 그의 따뜻하고도 견고한 목회적 리더십 아래 모인 무리들을 세상은 ‘메노나이트’라 부르기 시작했습니다.
2. 역사적 발자취: 타오르는 화형대 위에서 피어난 평화의 찬가
메노나이트의 역사는 한 장 한 장이 순교의 피로 쓰인 거대한 순교록입니다. 명작 ‘순교자의 거울(Martyrs Mirror)’에 기록된 이들의 죽음은 눈물 없이 읽을 수 없습니다. 예컨대 디르크 빌렘스(Dirk Willems)라는 메노나이트 교도는 박해자를 피해 얼음 호수 위로 도망치다가, 자신을 쫓아오던 체포조 군인이 얼음이 깨져 물에 빠져 죽어가는 모습을 보았습니다. 빌렘스는 도망칠 기회를 포기하고 돌아서서 원수 같은 군인의 손을 잡아 목숨을 구해주었습니다. 그러나 그 군인은 대장에게 눈물을 흘리며 빌렘스를 넘겨주었고, 빌렘스는 결국 화형대에서 불타 죽었습니다. 원수까지 사랑하라는 주님의 명령을 죽음으로 완성한 것입니다.
이들은 국가에 대한 맹세 거부, 군 복무 거부라는 신념 때문에 네덜란드에서 독일로, 다시 러시아의 황무지로 쫓겨 다녔습니다. 러시아에서 땅을 일구어 번영을 이룰 만하면 또다시 징집령이 내려졌고, 그때마다 메노나이트들은 미련 없이 정든 가옥과 전답을 버리고 북미(미국, 캐나다)와 남미의 오지로 망명의 길을 떠났습니다. 그들에게는 세상의 영토보다 그리스도의 평화라는 법이 훨씬 더 무겁고 소중했기 때문입니다.
3. 교리적 특징: 국가와 교회의 분리, 그리고 철저한 복음적 제자도
메노나이트는 아미시와 뿌리를 공유하지만, 문명을 죄악시하지 않고 적극적으로 세상 속으로 들어가 복음의 가치를 실현한다는 점에서 차이가 있습니다.
신앙의 자발성과 성인 침례:영아는 스스로 신앙을 고백할 수 없으므로 유아세례는 효력이 없으며, 오직 장성하여 자발적으로 예수를 주라 고백하는 자에게만 침례를 베풀어야 한다고 믿습니다.
국가와 교회의 철저한 분리:교회는 세상 권력의 통제를 받아서도 안 되며, 정치적 힘을 이용해 신앙을 강요해서도 안 된다고 천명했습니다.
비폭력 평화주의 (Pacifism):예수의 산상수훈 가르침을 따라 기독교인은 결코 무기를 들거나 타인의 생명을 해치는 전쟁에 참여할 수 없다고 믿습니다.
사상과 실천의 일치:삶이 따르지 않는 신학은 가짜라고 보며, 평화 공동체를 이루고 가난한 자를 돕는 구제 사업을 교회의 본질적인 의무로 여깁니다.
4. 개신교의 신학적 평가: 잃어버린 ‘기독교 윤리’의 양심을 깨우는 나침반
과거 마틴 루터와 존 칼빈은 이들을 사회 질서를 무너뜨리는 무정부주의자라며 비판하고 정죄했으나, 현대 개신교 신학계는 메노나이트에게 거대한 신학적 빚을 졌음을 솔직하게 고백합니다.
종교의 자유의 기초 정립:메노나이트가 목숨 바쳐 사수해 낸 ‘교회와 국가의 분리’ 사상은 현대 민주주의와 현대 개신교(특히 침례교회)가 누리고 있는 신앙과 종교의 자유의 절대적인 토대가 되었습니다.
값싼 은혜에 대한 경종:독일의 신학자 디트리히 본회퍼는 메노나이트의 삶을 보며 ‘값비싼 제자도’의 전형을 보았다고 극찬했습니다. 말로만 믿고 삶은 세상과 똑같은 현대 주류 개신교인들에게, 이들이 보여주는 철저한 윤리적 삶과 예수 가르침의 실천은 교회의 본질을 돌아보게 만드는 뼈아픈 나침반이 됩니다.
5. 복음적인 접근 전략: 교리적 토론을 넘어 ‘평화의 복음’으로 동역하기
현재 메노나이트는 전 세계 80여 개국에 약 210만 명의 성도를 둔 견고한 복음주의 교단으로 성장했습니다. 한국에도 메노나이트 선교 단체와 교회가 활동 중입니다. 이들을 향한 선교 및 복음적 접근 전략은 '교정'이 아닌 '아름다운 동역과 영적 균형'에 방점이 찍혀야 합니다.
'메노나이트 중앙위원회(MCC)'와의 평화 구호 사역 동역:메노나이트는 전 세계의 기근, 전쟁, 재난 지역에서 가장 먼저 들어가 조건 없는 그리스도의 사랑을 실천하는 선교 네트워크(MCC)를 가지고 있습니다. 이들과 함께 분쟁 지역에서 구호 활동을 펼치며 선교적 연대를 맺는 것이 가장 훌륭한 복음적 접근입니다.
그리스도 중심의 ‘구원관’ 재확인:메노나이트 신앙의 위험성은 지나치게 '제자도(Discipleship)'와 '행위적 평화주의'를 강조하다가, 자칫 복음의 핵심인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대속의 은혜와 믿음으로 의롭다 함을 얻는 칭의(Justification)의 기초가 약화될 수 있다는 점입니다. 성경 공부를 통해 평화 운동의 에너지가 인간의 도덕적 의지가 아닌, 예수의 보혈의 은혜에서 나오는 것임을 서로 격려하며 신학적 균형을 잡아주어야 합니다.
화해 사역자로서의 리더십 공유:메노나이트가 수세기 동안 축적해 온 ‘갈등 전환(Conflict Transformation)’과 비폭력 화해 프로그램의 노하우를 주류 개신교회에 전수받고, 대신 주류 교회가 가진 역동적인 전도와 개척 선교의 에너지를 그들에게 공급하는 상호 호혜적 선교 모델을 구축해야 합니다./ 발행인 윤광식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