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 발생의 근원: 에페소 공의회의 정치적 소용돌이와 외로운 추방자
서기 431년, 에페소의 성모마리아 성당은 신학적 논쟁을 빙자한 잔혹한 권력 투쟁의 전쟁터였습니다. 당시 세계 기독교의 중심지였던 콘스탄티노플의 총대주교 네스토리우스(Nestorius, 386~451)는 신학적 왜곡을 막기 위해 한 가지 주장을 펼쳤습니다. 신성을 강조한 나머지 예수의 참된 인성을 흐리던 알렉산드리아 학파에 맞서, 신성은 죽을 수 없으므로 마리아를 ‘하느님의 어머니(Theotokos)’라고 부르기보다 ‘인간 그리스도의 어머니(Christotokos)’로 불러야 한다는 주장이었습니다. 그러나 정적이었던 알렉산드리아의 키릴로스는 군대와 뇌물, 그리고 정치적 음모를 동원하여 네스토리우스가 도착하기도 전에 공의회를 열어 그를 인성과 신성을 분리한 흉악한 이단으로 정죄하고 추방했습니다. 네스토리우스는 이집트의 거친 사막으로 유배되어 쓸쓸히 죽어갔지만, 그리스도께서 참 인간으로 이 땅에 오셨음을 목숨 걸고 지키려 했던 그의 신학을 따르던 수많은 시리아와 메소포타미아의 성도들은 로마 비잔틴 제국의 국경을 넘어 페르시아 제국으로 거대한 망명의 길을 떠났습니다. 이것이 서구 중심의 역사에서 지워진 고대 아시아 기독교, ‘아시리아 동방교회’의 가슴 아픈 시작이었습니다.
2. 역사적 발자취: 실크로드를 기도로 물들인 찬란한 영광과 사막의 매몰
로마 제국의 오랜 원수였던 페르시아 제국은 비잔틴에서 쫓겨난 이들을 따뜻하게 맞이했습니다. 페르시아의 수도 크테시폰에 총대주교좌를 세운 동방교회는 인류 역사상 가장 경이로운 선교의 대서사시를 쓰기 시작했습니다. 이들은 낙타를 타고 험준한 파미르 고원을 넘어 실크로드를 가로질렀습니다. 서기 635년, 동방교회의 사제 아로본(Alopen) 일행은 마침내 당나라의 수도 장안(현재의 시안)에 도달했습니다. 당 태종은 이들을 극진히 환영하며 황실 도서관에서 성경을 번역하게 했고, 장안에 대진사(大秦寺)라는 교회를 세워주었습니다. 중국 역사에 ‘경교(景敎, 빛의 종교)’라 기록된 이 위대한 신앙은 당나라 전역에 퍼져나갔고, 781년에 세워진 ‘대진경교유행중국비’에는 삼위일체와 그리스도의 탄생, 구원의 진리가 선명한 한문과 시리아어로 새겨져 오늘날까지 전해집니다. 동방교회는 중앙아시아의 유목민들, 몽골 부족들, 그리고 인도의 토착 주민들(토마 기독교인)까지 복음화하며 10세기 한때 지리적으로 지구상에서 가장 거대한 교구를 가진 영광을 누렸습니다. 그러나 영광은 오래가지 못했습니다. 14세기 이슬람으로 개종한 몽골의 폭군 티무르가 아시아 전역의 기독교인을 뿌리 뽑기 위해 대대적인 학살을 감행했습니다. 중앙아시아와 중국의 교회들이 단숨에 사막의 모래 속으로 매몰되었습니다. 남겨진 아시리아 동방교회 성도들은 이라크와 터키 국경의 하카리 산악지대로 깊숙이 숨어들었으나, 1차 세계대전 당시 오스만 제국에 의해 인구의 3분의 1이 학살당하는 ‘아시리아 제노사이드’의 참극을 겪으며 찬란했던 고대 아시아 교회의 횃불은 겨우 꺼지지 않을 만큼의 가냘픈 불씨로 축소되고 말았습니다.
3. 교리적 특징: 예수의 언어로 드리는 전례와 참된 인성의 수호
아시리아 동방교회는 서구의 가톨릭이나 정교회, 개신교와 완전히 독립된 고대 사도적 전례를 고수합니다.
참된 인성과 신성의 결합: 이들은 네스토리우스의 누명을 벗고, 예수 그리스도는 한 인격 안에 신성과 인성이 혼합되거나 분리되지 않고 완벽하게 결합된 참 하나님이자 참 사람임을 믿습니다.
고대 아람어(시리아어) 전례:이 교회의 가장 경이로운 점은, 오늘날에도 성도들이 예배를 드릴 때 2천 년 전 예수님과 제자들이 산상수훈을 말씀하시고 십자가에서 부르짖으셨던 그 고대 고향 언어인 아람어(Peshitta 성경)를 그대로 사용하여 기도하고 찬양한다는 점입니다.
성상 거부와 소박한 십자가: 가톨릭의 마리아 숭배나 정교회의 이콘(성화) 숭배를 단호히 거부합니다. 그들의 성전에는 아무런 인물 형상이 없으며, 오직 인류를 위해 고난받으시고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를 상징하는 민무늬의 ‘빈 십자가’ 하나만이 제단 뒤에 외로이 서 있을 뿐입니다.
4. 개신교의 신학적 평가: 이단이라는 천년의 누명을 벗은 위대한 선교적 뿌리
현대 개신교 신학계와 교회사학계는 아시리아 동방교회에 대해 전면적인 역사적 복권을 단행했습니다. 1994년 가톨릭과 동방교회가 그리스도론 공동 선언을 발표했듯, 이들은 신성을 모독한 이단이 결코 아니었습니다. 단지 서구 로마 제국의 정치적 역학 관계와 언어적 번역(그리스어의 우시아와 휘포스타시스 개념을 시리아어로 옮기는 과정)의 오해로 인해 억울하게 파문당한 우리의 소중한 형제교회였습니다. 특히 아시아 개신교 신학자들에게 이들은 축복과 같습니다. 기독교는 서구 유럽인들이 전해준 ‘서구의 종교’가 아니라, 서구인들이 야만 상태에 있던 수백 년 전 이미 아람어와 한문으로 복음을 소통하며 아시아 전역을 휩쓸었던 ‘아시아 본래의 종교’였음을 증명하는 산증인이기 때문입니다. 이들이 남긴 뜨거운 실크로드 선교 야성은 현대 개신교 선교학의 가장 위대한 유산으로 평가받고 있습니다.
5. 복음적인 접근 전략: 서구 기독교의 오만을 버리고 사도적 전통을 품는 연대
오늘날 아시리아 동방교회는 이라크의 오랜 내전과 ISIS의 참혹한 테러를 피해 역사적 중심지인 이라크 에르빌(Erbil)과 미국 시카고 등지의 디아스포라 공동체에 약 40만 명만이 생존해 있습니다. 이들을 향한 선교적 접근은 결코 ‘개종’의 대상이 되어서는 안 됩니다.
사도적 형제로서의 무릎 꿇음과 사과: 서구 신학의 잣대로 그들을 여전히 ‘네스토리우스파 이단’이라 부르는 오만을 멈추어야 합니다. 도리어 오랜 세월 복음의 최전선에서 이슬람의 채찍을 맞으며 예수의 언어를 지켜내 준 그들의 눈물겨운 생존에 감사를 표하고, 주류 기독교계가 자행했던 역사적 소외에 대해 용서를 구하는 치유의 대화가 우선되어야 합니다.
이슬람 세력권 안에서의 인도주의적 보호와 서포트: 오늘날 이라크와 시리아 땅에 남아 있는 동방교회 성도들은 매일 밤 생명의 위협을 느끼며 살아가는 난민들과 같습니다. 이들에게 복음 전도지를 돌리기 전에, 그들의 무너진 성전을 보수해주고, 청년들에게 일자리를 제공하며, 생존을 보장해 주는 인도주의적 연대 사역(NGO 코퍼레이션)이 가장 강력한 복음적 실천입니다.
고대 영성과 현대 전도 에너지의 융합:그들이 가진 고대 아람어 성경의 깊은 신비주의 영성과 하나님의 임재를 구하는 전례적 깊이를 개신교가 배우고, 대신 현대 개신교가 가진 역동적인 어린이 교육, 가르침의 은사, 현대적 선교 마인드를 그들의 차세대 청소년들에게 전수하는 상호 유기적인 ‘영적 이식 사역’을 펼쳐야 합니다. 이를 통해 고대 아시아 교회의 불씨가 꺼지지 않고 마지막 시대 전 세계를 향해 다시 한 번 타오르도록 동역해야 합니다./ 발행인 윤광식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