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26년 6월 3일, 대한민국 민주주의의 시계가 수십 년 전으로 퇴행했다. 제10회 전국동시지방선거 일부 투표소에서 투표용지가 부족해 투표가 중단되는 황당한 사태가 발생한 것이다. 주권자의 신성한 권리 행사를 완벽히 보장해야 할 선거관리위원회가 도리어 국민의 참정권을 침해하는 주범이 됐다.
이는 전 세계에 K-방역과 선진 시스템을 자랑하던 대한민국에서 결코 일어나서는 안 될 ‘후진국형 선거 참사’이자 선거 관리 역사에 씻을 수 없는 오점이다.
선관위의 안일하고 무능한 행정 편의주의는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우리는 이미 지난 코로나19 확진자 사전투표 당시, 유권자의 표를 허술한 종이 상자나 플라스틱 소쿠리에 담아 옮겼던 ‘소쿠리 투표’ 사태를 똑똑히 기억하고 있다. 당시에도 선관위는 거센 국민적 공분을 샀으나, 그때뿐이었다.
선거 때마다 터져 나오는 시스템 부실과 현장 대응 미숙 지적에도 선관위는 늘 ‘소 잃고 외양간 고치기’ 식의 면피용 대책으로 일관해 왔다. 이번 투표용지 고갈 사태 역시 유권자 수조차 제대로 예측하지 못하고 현장 매뉴얼도 부실했던 선관위의 고질적인 타성과 태만이 부른 필연적 결과다.
바쁜 일상을 쪼개어 투표소를 찾은 유권자들은 투표용지가 없다는 황당한 안내 글 앞에 발길을 돌리거나 하염없이 대기해야 했다. 투표 시간의 제한을 고려하면, 선관위의 준비 부족은 단순한 행정 실수가 아니라 국민의 신성한 ‘참정권 박탈’과 다름없다.
민주주의 국가에서 유권자가 투표소에 갔는데 공급할 용지가 없다는 것은 그 어떤 변명으로도 정당화될 수 없다.
선거 관리라는 헌법이 부여한 본연의 책무조차 완수하지 못하는 기관이라면 존재 이유를 전면 재검토해야 마땅하다. 이제 선관위의 상투적인 사과와 땜질식 처방으로 대충 넘어갈 단계를 지났다. 조직의 뼈대를 통째로 바꾸는 근본적인 개혁이 필요하다. 헌법기관이라는 독립성의 방패 뒤에 숨어 무능과 안일을 키워온 인적 구조를 과감히 인적 쇄신해야 한다. 물자 공급 시스템과 위기 대응 매뉴얼을 원점에서 전면 재구축하고, 이번 참사를 유발한 지휘부와 고위 관계자들에게 엄중한 법적·행정적 책임을 물어야 한다. 엄정한 중립성만큼이나 중요한 것은 완벽한 관리 능력이다. 신뢰를 잃은 선거 기관은 민주주의를 지탱할 수 없다는 경고를 선관위는 무겁게 받아들여야 할 것이다./ 발행인 윤광식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