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로교 총회 111회기 정통성을 묻다

장로교 총회 회기에 담긴 한국교회의 슬픈 역사

2026-09-03 21:20:54  인쇄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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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291일 평양에서 열린 조선예수교장로회 총회 창립에 참석한 총회대의원들

올가을도 어김없이 한국 장로교회 각 교단의 정기총회 시즌이 돌아왔다. 장로교단 마다 111회 총회혹은 76회 총회준비를 서두르고 있는 시점에 문득 깊은 생각에 잠기게 된다.

1912년 조선예수교장로회 제1회 총회가 시작된 이래 2026년 올해까지 114년의 세월이 흘렀으니 단순 계산으로는 115가 되어야 맞지만 사라진 숫자들의 행간에는 한국 장로교회가 통과해야 했던 일제의 모진 박해와 6·25 전쟁의 포화, 그리고 그 속에서 피로 지켜낸 신앙 정통성의 눈물겨운 이야기가 숨겨져 있다.

평양 장대현교회에서 울려 퍼진 첫 고동소리

한국 장로교 총회의 역사는 191291, 평양 장대현교회에서 돛을 올렸다. 전국에서 목사와 장로, 선교사 등 총 221명의 총대가 모여 조선예수교장로회 총회를 창립한 것이다. 이는 한국 장로교회가 하나의 공교회로서 역사적·제도적 법통을 수립한 감격스러운 첫걸음이었다.

그러나 이 위대한 행진은 일제 강점기라는 거대한 암흑기를 마주하며 멈춰 서게 된다.

암흑의 3, 빼앗긴 회기와 무너진 공교회

역사적 계산에서 첫 번째 공백이 발생한 것은 일제 말기였다. 1938년 제27회 총회에서 한국 장로교회는 일제의 총칼 앞에 무릎을 꿇고 신사참배는 종교가 아닌 국가 의식이라는 반성경적 결의를 통과시키는 아픈 오점을 남겼다. 제도의 껍데기는 유지되었으나, 영적 순결성에는 치명적인 상처를 입은 배교의 순간이었다. 일제는 여기서 멈추지 않고 1942년 제31회 총회를 끝으로 조선장로교회를 강제 해산하여 일본기독교조선교단으로 강제 통합시켰다. 이로 인해 해방 직전인 1943, 1944, 1945년까지 총 3년 동안 총회는 아예 소집되지 못했다. 이것이 바로 우리의 역사에서 지워진 3년의 공백이다.

포화 속에서 2년 동안 사수한 눈물의 제36회 총회

해방 후 간신히 역사적 기수를 복원했으나, 곧이어 6·25 전쟁이라는 민족적 대참사가 터졌습니다. 19504월 대구제일교회에서 모인 제36회 총회는 당시 교단 내 갈등으로 파행을 겪다 “9월 청주에서 다시 모이자며 정회했다. 그러나 9월이 오기 전 6.25전쟁이 발발하면서 총회는 영영 중단될 위기에 처했다. 이때 한국교회 지도자들은 1년 뒤인 1951525일 피난지 부산 중앙교회에 다시 모였다. 포탄이 터지는 소리를 들으며 피난지 천막 교회를 전전하면서도, 1950년에 멈춰 섰던 제36회 총회의 속회를 눈물로 이어 나갔다. 연도로는 1950년과 19512년이 흘렀지만, 총회는 이를 하나의 36회 총회로 묶었다. 전쟁의 참화 속에서도 총회의 법통을 끊지 않으려는 눈물겨운 노력 덕분에 또 한 번의 회기 통합(-1)이 이루어졌다. 결과적으로 [115년의 역사 - 일제 말기 미개최 3- 6·25 전쟁 회기 통합 1= 111]라는 정직한 연표가 완성된 것이다. 예장 합동과 통합, 개혁 등 주류 장로교단은 이 굴곡진 회기를 품고 오늘에 이르렀다.

배교의 족보를 거부한 고신총회의 '76

재미있는 사실은 같은 장로교단이면서도 고신총회는 전혀 다른 숫자인 76회 총회로 모인다는 점이다. 여기에는 한국 장로교 정통성의 본질을 묻는 또 다른 날카로운 질문이 담겨 있다.

신사참배에 저항하다 옥고를 치른 출옥 성도들을 중심으로 결성된 고신 측은, 1938년 신사참배를 가결한 기존 총회의 역사적 기수를 그대로 이어받기를 거부했다. 공교회가 하나님 앞에 배교하여 영적으로 파탄 난 족보를 무비판적으로 자랑하기보다, 신앙의 순결성을 지켜낸 순교자들의 터 위에서 교회를 새로 세우고자 했던 것이다.

결국 이들은 1952911일 경남 진주성남교회에서 대한예수교장로회 총노회를 독자적으로 결성했다. 이때를 교단의 독립적인 1회 기점으로 삼아 매년 한 회기씩 더해 온 결과가 바로 올해의 76(2026 - 1952 + 1)’이다. 행정적 족보보다 신앙의 순결성이야말로 교회의 참된 정통성이라는 강력한 신앙고백인 셈이다.

결어: 회기가 한국교회사에 던지는 참된 의미

오늘날 한국 장로교회는 수많은 교단으로 갈라져 저마다 우리가 진짜 법통이다라며 정통성 경쟁을 벌이곤 한다. 그러나 역사가 증명하듯, 정통성은 어느 한 교단이 배타적으로 독점할 수 있는 전유물이 아니다.

총회 회기 숫자가 우리 한국교회사에 주는 진짜 의미는 교권의 크기나 족보의 자랑에 있지 않다. 그것은 합동과 통합이 지켜온 역사적 제도라는 그릇, 고신이 사수하고자 했던 순교적 신앙이라는 본질을 함께 담아내야 한다는 거룩한 경고이다. 111회와 76회라는 각기 다른 숫자의 총회를 맞이하며, 우리는 숫자의 우위를 자랑하기 전에 1938년의 배교를 가슴 치며 회개했던 선진들의 눈물을 먼저 기억해야 한다. 그리고 포화 속에서도 예배를 지키기 위해 부산 피난지 바닥을 적셨던 그 순결한 개혁주의 정신을 회복해야 한다.

교회사 속에 아로새겨진 회기의 숫자는 교권의 훈장이 아니라, 오늘날 혼탁한 세상 속에서 한국교회가 함께 짊어져야 할 거룩한 영적 책임의 무게이다./ 발행인 윤광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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