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바티칸 신앙교리성이 동정녀 마리아를 "공동 구원자" 또는 "중재자"로 여기는 것은 그리스도교 신앙을 왜곡하고 미신적인 관점으로 이어진다고 경고하고 성모 마리아를 더 이상 ‘공동 구세주’로 부르지 말아야 한다고 공식 발표했다. 가톨릭계에서 수백 년 동안 이어온 논쟁이 마침내 종지부를 찍은 것이다. 이는 예수 그리스도의 구속 사역이 유일하며, 인간의 협력으로 완성될 수 없다는 교리적 입장을 명확히 한 결정으로 평가된다.
교황청 신앙교리부는 지난 4일 새 교령 『신앙인의 어머니(The Mother of the Faithful People)』를 통해 “마리아는 예수의 구속 사역에 협력했지만, 구속의 주체는 오직 예수 그리스도뿐”이라며 “그에게 공동 구속자라는 칭호를 사용하는 것은 부적절하다”는 입장을 밝혔다.
교황청은 “공동 구속자라는 표현은 하나님의 아들이며 인간을 구원하기 위해 사람이 되신 예수의 배타적 역할을 가릴 위험이 있다”며 “이것은 오히려 마리아를 참되게 공경하지 않는 표현”이라고 덧붙였다. 대신 교황청은 마리아를 “구원과 은총의 일에서 첫째 되는 협력자”로 규정하고, ‘주님의 어머니’ 혹은 ‘신앙인의 어머니’라는 호칭 사용을 권고했다.
가톨릭 교회는 431년에 마리아가 하느님의 어머니(테오토코스)임을 확언하는 신성한 모성 교리, 649년에 영구 동정 교리, 1854년에 원죄 없이 잉태된 교리, 1950년에 마리아 승천 교리 등을 만들어 내며 신격화 해왔다.
이번 교령은 지난달 교황 레오 14세의 최종 승인과 신앙교리부 장관 빅토르 마누엘 페르난데스 추기경의 서명으로 공표됐다. 17세기부터 이어진 ‘공동 구세주’ 논쟁은 요한 바오로 2세 전 교황이 지지 의사를 표하기도 했으나, 프란치스코 전 교황과 베네딕토 전 교황은 “예수의 유일한 구원 사역을 훼손할 수 있다”며 명백히 반대해왔다.
한국의 신학자들은 교황청의 이번 결정이 복음의 본질 회복의 측면에서 매우 중요하고 긍정적인 진전이라고 입을 모았다. 마리아 신학은 종교개혁 이후 가톨릭과 개신교를 가르는 가장 큰 신학적 장벽 중 하나였기 때문이다.
“중세의 왜곡 바로잡은 성경적 결정”
이번 결정을 김영한 박사(숭실대 명예교수, 기독교학술원 원장)는 “매우 성경적인 결정이며, 교황청이 오랜 오류를 바로 잡았다는 점에서 중요한 역사적 진전”이라고 평가했다.
특히 그는 “중세교회가 교황 절대주의를 주장하며 정통 복음 신앙에서 벗어났다. 그러면서 마리아를 신격화하고 민간신앙과 결합한 것이 가톨릭의 큰 잘못이었다”며 “교황이 이를 바로잡는 것은 교리적 정화의 의미를 갖는다”고 말했다.
루터가 교황을 ‘적그리스도’라 부르며 개혁을 일으킨 것도 바로 이런 교리적 왜곡 때문이었다. 김 박사는 “이번 결정은 가톨릭의 잘못된 전통을 제거하기 위해 일어난 종교개혁의 정신과도 맞닿아 있다”며 “기독교 안에서의 대화와 협력의 장이 더 넓어지기를 바란다”고 전했다.
다만, 이번 교령이 가톨릭 신자들의 실제 신앙 관습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는 더 지켜봐야 한다는 신중론도 제기된다.
“교리 넘어 실제적 ‘관행’ 변화가 관건”
김선일 교수(웨신대)는 “오랫동안 논란이던 주제에 대해 교황청이 공식적으로 종지부를 찍은 것은 다행”이라면서도 “그동안 사실상 마리아 숭배와 다름없는 관행이 이어져 온 것이 문제였다”고 지적했다.
김 교수는 “국내 가톨릭 공식 교재에도 마리아는 ‘숭배’가 아닌 ‘공경’의 대상이라고 쓰여 있지만, 실제로는 마리아에게 기도하거나 묵주반지를 사용하는 등 기도의 중보자로 삼는 관습이 강하게 남아있다”며 “이번 새 교령에 따라 이러한 교리 교육과 전례가 실제로 바뀔지가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그는 성경이 명확히 말하지 않는 마리아의 ‘원죄 없는 잉태(무염시 잉태)’나 승천 교리 등이 신비주의적 해석 안에서 형성되었다고 비판하며, 이번 결정을 계기로 이러한 관행들이 조정돼야 한다고 덧붙였다.
한편 이번 교령은 단순한 신학 정리를 넘어, 가톨릭과 개신교의 교리 대화에 새로운 장을 여는 사건으로 평가된다. ‘오직 그리스도(Solus Christus)’는 종교개혁의 핵심이었으며, 마리아론은 교회 일치 운동의 가장 큰 걸림돌 중 하나였기 때문이다.
이상규 석좌교수(백석대)는 “이번에 교황청이 마리아는 공동 구세주가 아니라고 한 것은 로마 가톨릭 신학의 큰 변화”라며 “비록 ‘오직 그리스도’라는 그리스도 유일성으로 완전히 회귀한 것은 아닐지라도, 개신교와의 신학적 거리를 좁히는 긍정적 움직임”이라고 평가했다.
그러나 이 교수는 “여전히 구원에 있어 ‘신인협동설’을 취하고 있는 교황청이 그리스도의 단독 구속 교리를 완전히 수용했다고 보긴 어렵다”며 “이번 교령의 진의가 개신교와의 연합을 염두에 둔 것인지, 교회 내부의 교리 정화를 위한 것인지 지켜볼 필요가 있다”고 신중한 입장을 보였다.
교황청이 ‘그리스도 중심성’이라는 신앙의 본질을 재확인했다는 점에서, 개신교 진영과의 신학적 대화 가능성은 한층 확장될 것으로 보인다. 김영한 박사는 “모든 교단이 자기를 절대화하는 것을 삼가고 같은 기독교 테두리 안에서 대화와 협력의 장이 마련됐으면 한다”고 제언했다. / 윤광식 기자(kidokilbo@daum.net)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