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마가의 다락방에 성령이 내리는 모습을 표현한 그림
칠흑 같은 어둠이 예루살렘 성내를 짓누르던 밤이었습니다.
AD 44년 유월절 무렵, 예루살렘의 공기는 숨이 막힐 듯 무거웠습니다. 헤롯 아그리파 1세의 칼날에 사도 야고보가 순교했고, 교회의 기둥인 베드로마저 깊은 지하 감옥에 갇혔기 때문입니다.
내일 아침이면 베드로 역시 처형될 운명이었습니다. 초대 교회는 절체절명의 위기 앞에 놓여 있었습니다. 그 공포의 정점에서, 예루살렘 한편에 위치한 한 대저택의 대문이 조심스럽게 열렸습니다. 사도들과 성도들이 야간 통행금지와 삼엄한 감시를 뚫고 하나둘 모여들었습니다. 그곳은 바로 마가 요한의 어머니 마리아의 집이었습니다.
목숨을 건 대문의 빗장을 풀다
마리아는 예루살렘 성내에 수백 명을 수용할 수 있는 넓은 다락방과 마당을 가진 부유한 여인이었습니다. 집안에 ‘로다’라는 개인 여종을 둘 만큼 경제적, 사회적 지위가 탄탄했습니다. 그녀에게는 잃을 것이 많았습니다. 발각되는 즉시 가산은 몰수당하고, 자신과 아들 마가 요한의 목숨까지 위태로워질 판국이었습니다. 하지만 마리아는 두려움 대신 대문의 빗장을 푸는 편을 선택했습니다. 그녀는 자신의 안락한 보금자리를 거친 폭풍우 속 교회의 마지막 ‘방주’로 내어놓았습니다.
"이에 베드로가 갇혔고 교회는 그를 위하여 간절히 하나님께 기도하더라... 깨닫고 마가라 하는 요한의 어머니 마리아의 집에 가니 여러 사람이 거기에 모여 기도하고 있더라" (사도행전 12:5, 12)
방 안에는 눈물과 땀 냄새, 그리고 간절한 부르짖음이 가득했습니다. 마리아는 성도들의 손을 맞잡으며 기도의 불을 지폈습니다. 전면에서 설교하는 사도는 아니었지만, 그녀는 기도의 어머니이자 교회를 품어 안는 거대한 울타리였습니다.
예루살렘의 영적 심장부
교회사 연구가들은 마리아의 이 집을 ‘인류 역사상 최초의 지상 교회’이자 초대 교회의 영적 심장부로 평가합니다. 바로 성령 강림의 현장이었기 때문입니다. 이 집의 다락방은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못 박히시기 전 성찬식을 행하셨던 ‘마가의 다락방’과 동일한 장소로 추정됩니다. 오순절 날 120명의 성도가 성령의 충만함을 받았던 바로 그 신앙의 발원지입니다. 기독교가 공인되기 전, 박해 시대의 교회는 건물이 아니라 이처럼 자발적으로 자기 공간을 헌신한 이들의 ‘가정 교회(Domus Ecclesiae)’를 통해 생존하고 확장되었습니다. 마리아의 집은 그 가장 위대한 선례였습니다. 기적의 문을 두드리는 소리, 밤이 깊어갈 무렵, 저택의 바깥 대문을 거칠게 두드리는 소리가 들렸습니다. 순간 방 안의 기도 소리가 멎었고, 성도들의 심장은 얼어붙었습니다. ‘군사들이 들이닥친 것일까?’어린 여종 로다가 떨리는 걸음으로 대문가로 나갔습니다. 문밖에서 들려온 목소리는 뜻밖에도 옥에 갇혀 있어야 할 베드로 사도의 목소리였습니다. 천사의 도움으로 극적으로 탈옥한 베드로가 발걸음을 재촉해 가장 먼저 찾아온 곳이 바로 이곳, 마리아의 집이었습니다.
"베드로가 문을 두드린대 로다라 하는 여자 아이가 영접하러 나왔다가 베드로의 음성인 줄 알고 기뻐하여 문을 미처 열지 못하고 달려 들어가 말하되 베드로가 대문 밖에 섰더라 하니"(사도행전 12:13-14)
로다의 말을 믿지 못하던 성도들이 마침내 문을 열었을 때, 그곳에는 살아있는 기적의 증거인 베드로가 서 있었습니다. 마리아와 성도들의 눈물 섞인 부르짖음이 마침내 헤롯의 칼날을 이기고 기적의 응답을 받아낸 순간이었습니다.
위대한 영적 계보를 잇다
마리아의 헌신은 공간을 내어주는 것에 그치지 않았습니다. 그녀의 위대한 신앙은 고스란히 다음 세대로 이어졌습니다. 교회사 연구에 따르면 그녀는 예루살렘 교회의 유력한 지도자였던 바나바의 누이(혹은 고모)였습니다. 또한 그녀의 아들 마가 요한은 삼촌 바나바와 사도 바울을 따라 이방인 선교의 길에 나섰으며, 훗날 인류 역사상 최초의 복음서인 ‘마가복음’을 기록하는 위대한 전도자가 됩니다.
어머니 마리아가 목숨을 걸고 지켜낸 기도의 다락방에서 자란 아이가, 전 세계를 변화시킨 복음의 기록자가 된 것입니다. 예수님이 승천하신 후, 사도들이 담대히 복음을 전할 수 있었던 배경에는 마리아처럼 자신의 가장 소중한 공간과 삶을 깨뜨려 교회와 동역했던 여인들의 위대한 ‘숨은 헌신’이 있었습니다./ 발행인 윤광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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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 연재 예고]
마리아의 집에서 시작된 복음의 불길은 이제 국경을 넘어 유럽으로 향합니다. 다음 편에는 사도 바울을 만나 유럽 최초의 교회를 세우는 데 온 삶을 바친 자색 옷감 장사, '빌립보의 루디아' 이야기로 찾아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