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 속 여인 제14화] 로마 교회의 기둥, 브리스길라

고난의 천막을 꿰매어, 로마 제국의 심장부에 교회를 세우다

2026-07-21 20:16:18  인쇄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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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마 황제의 궁정에서 날아든 청천벽력 같은 어명이 도시를 뒤흔들었습니다. AD 49, 클라우디우스 황제는 유대인들은 모두 로마를 떠나라는 추방령을 내렸습니다. 역사가 수에토니우스(Suetonius)의 기록에 따르면, 당시 로마 내 유대인 커뮤니티 안에서 크레스투스(Chrestus, 그리스도를 의미)’라는 인물로 인한 소요가 일어나자 황제가 극단적인 조치를 취한 것이었습니다. 이 강제 이주의 행렬 속에 브리스길라(Priscilla)와 그녀의 남편 아굴라가 있었습니다. 삶의 터전을 통째로 빼앗긴 채, 고린도라는 낯선 항구 도시에 내던져진 부부. 하지만 그들의 눈빛에는 절망 대신, 보이지 않는 하나님의 섭리를 향한 신뢰가 흐르고 있었습니다.

고난의 길목에서 만난 영적 거인

모든 것을 잃고 도착한 고린도에서 부부는 생계를 위해 천막을 만드는 일을 다시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그 고단한 일터에서, 아시아를 거쳐 그리스 선교에 지쳐 있던 또 한 명의 천막 제조업자, 사도 바울을 만나게 됩니다.

"아굴라라 하는 본도에서 난 유대인 한 사람을 만나니 클라우디오가 모든 유대인을 명하여 로마에서 떠나라 한 고로... 생업이 같으므로 함께 살며 일을 하니 그 생업은 천막을 만드는 것이더라"(사도행전 18:2, 3)

낮에는 함께 땀 흘려 가죽을 꿰매고, 밤에는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나누며 부부와 바울은 단순한 동료를 넘어 영적인 삼겹줄로 묶였습니다. 로마에서의 추방이라는 거대한 비극은, 사실 바울이라는 위대한 사도와 브리스길라 부부를 만나게 하시려는 성령의 거대한 설계(Providence)였습니다.

남편의 이름 앞에 배치된 여성 지도자

교회사와 성경 서신서를 연구하는 학자들은 브리스길라를 고대 가부장제 사회의 틀을 깨부순 초대 교회 최고의 여성 신학자이자 리더로 평가합니다. 이름의 순서가 가진 비밀을 보면, 신약성경에 이들 부부의 이름은 총 6번 등장합니다. 놀랍게도 그중 4번은 남편 아굴라보다 아내인 브리스길라의 이름이 먼저 기록되어 있습니다(: 로마서 16:3, 사도행전 18:18). 당대 문화에서 여성의 이름을 먼저 쓴다는 것은 브리스길라의 영적 영향력과 교회 내 지도력이 남편보다 훨씬 뛰어났음을 증명하는 결정적 증거입니다.

성경 박사를 가르친 복음적 깊이

당대 최고의 학문 도시 알렉산드리아 출신의 천재 수사학자이자 성경 박사였던 아볼로가 에베소에서 설교할 때였습니다. 그의 메시지에 예수의 십자가와 부활, 성령에 대한 깊이가 부족함을 알아챈 브리스길라는 그를 조용히 집으로 초대했습니다. 그리고 그 위대한 학자에게 복음의 도를 정확하게 풀어서 가르쳤습니다(18:26). 그녀는 초대 교회의 숨은 신학적 스승이었습니다.

"나의 목숨을 위하여 자기들의 목숨까지도 내놓았나니

부부의 헌신은 에베소와 로마를 넘나들며 계속되었습니다. 클라우디우스 황제가 사망한 후, 부부는 다시 로마로 돌아가 위험을 무릅쓰고 자신의 집을 교회로 개방했습니다. 바울이 로마 교회에 편지를 보내며 가장 먼저 문안 인사를 전한 인물도 바로 이들이었습니다.

"너희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나의 동역자들인 브리스가와 아굴라에게 문안하라 그들은 내 목숨을 위하여 자기들의 목숨까지도 내놓았나니 나뿐 아니라 이방인의 모든 교회도 그들에게 감사하느니라"(로마서 16:3, 4)

바울은 그들을 나의 동역자라 부르며, 자신의 목숨을 구하기 위해 부부가 대신 단두대에 목을 내놓을 만큼 치열한 사선을 함께 넘었다고 고백합니다. 고린도 소요 사태나 에베소 폭동(19)의 현장에서 부부는 바울의 방패가 되어 주었던 것입니다.

복음을 위해 조각난 삶을 바치다

브리스길라는 평생 로마, 고린도, 에베소, 그리고 다시 로마와 에베소로 끊임없이 이주해야 했습니다. 정착할 만하면 복음을 위해, 혹은 박해 때문에 짐을 싸야 했던 나그네의 삶이었습니다. 하지만 그녀는 단 한 번도 자신의 삶이 조각났다고 원망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발걸음이 닿는 모든 도시에 자신의 집을 열어 가정 교회(Domus Ecclesiae)를 세웠고, 낙심한 사도들의 영적 고향이 되어 주었습니다. 세상은 그녀를 로마에서 쫓겨난 비참한 유대인 추방자로 기억할지 모르지만, 하나님 나라는 그녀를 세계 복음화의 심장부를 지켜낸 위대한 영적 거인으로 기록하고 있습니다./ 발행인 윤광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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