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전도자 빌립'의 네 딸들(예언자) 무덤은 현재 터키 남서부 파묵칼레에 위치한 고대 도시 히에라폴리스(Hierapolis) 유적지에 있다. 초대교회 역사가 유세비우스의 기록에 따르면 빌립은 말년에 딸들과 함께 이곳으로 이주하여 전도하다가 순교했으며, 부친인 빌립과 두 딸의 무덤이 이곳에 안장되었다고 전해진다. 나머지 두 딸은 에베소에 묻혔다는 전승도 있다.
AD 58년경, 지중해의 푸른 파도가 철썩이는 항구 도시 가이사랴. 이곳은 로마 총독부가 위치한 정치와 군사의 중심지이자, 온갖 이방 문화와 박해의 칼날이 도사리는 거친 땅이었습니다. 이 삼엄한 도시에 위치한 전도자 빌립의 집에는 매일같이 맑고 청아한, 그러나 제국의 기초를 흔들 만큼 강력한 네 여성의 목소리가 울려 퍼지고 있었습니다. 그들은 바로 빌립 집사의 네 딸이었습니다.
초기 예루살렘 교회의 일곱 집사 중 한 명이자, 사마리아와 광야에서 복음을 전했던 전도자 빌립에게는 평생을 주님께 바친 네 명의 딸이 있었습니다. 성경은 이들을 향해 매우 짧지만 강렬한 한 문장의 기록을 남겼습니다.
"이튿날 떠나 가이사랴에 이르러 일곱 집사 중 하나인 전도자 빌립의 집에 들어가서 머무르니라 그에게 딸 넷이 있으니 처녀로 예언하는 자라" (사도행전 21:8~9)
박해의 시대, 거룩한 스피커가 되다
‘처녀로 예언하는 자.’ 이 짤막한 수식어 속에는 당대 로마와 유대 사회의 고정관념을 깨부수는 위대한 신앙의 서사가 숨겨져 있습니다. 당시 유대 사회에서 여성은 공적인 자리에서 목소리를 내거나 가르칠 수 없었습니다. 하지만 성령은 오순절의 약속대로 이 보잘것없는 처녀들의 입술에 하나님의 말씀을 담으셨습니다.
"하나님이 말씀하시기를 말세에 내가 내 영을 모든 육체에 부어 주리니 너희의 자녀들은 예언할 것이요..." (사도행전 2:17)
네 자매는 시대를 분별하는 영적 통찰력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들이 행한 ‘예언’은 죄로 가득한 로마 제국의 한복판에서 하나님의 공의를 선포하고, 낙심한 성도들을 위로하며, 교회가 나아갈 방향을 제시하는 ‘거룩한 설교(Preaching)’이자 대언이었습니다. 자매들은 결혼을 통한 안락한 가정을 꾸리는 대신, 평생을 순결한 처녀로 살며 박해의 폭풍 속에서 교회를 지탱하는 하나님의 스피커가 되기로 결단했습니다.
초대 교회의 살아있는 '영적 전통의 전수자’
초대 교회사와 외경의 기록들을 깊이 연구해 보면, 빌립의 네 딸은 사도행전 이후의 역사에서 교회의 기둥 같은 역할을 감당했음을 알 수 있습니다. 2세기 초의 명망 높은 교부이자 히에라폴리스의 감독이었던 빠삐아스(Papias)는 "빌립의 딸들로부터 초기 교회와 사도들의 행적에 관한 수많은 기적과 전승을 직접 전해 들었다"고 기록했습니다. 자매들은 사도들의 사역을 생생하게 목격하고 이를 다음 세대에 증언한 ‘살아있는 역사책’이었습니다. 교회사학자 유세비우스(Eusebius)의 《교회사》에 따르면, 빌립과 그의 딸들은 훗날 예루살렘을 떠나 소아시아의 요충지인 프리기아(Hierapolis)로 이주했습니다. 그곳에서 자매들은 세상을 떠날 때까지 교회의 영적 지도자이자 예언자로서 엄청난 존경을 받았습니다. 그들의 무덤은 초대 교회 성도들의 위대한 신앙적 순례지가 되었습니다.
사도 바울의 눈물을 닦아준 위대한 연대
사도 바울이 3차 선교 여행을 마치고 예루살렘으로 가던 길에 이 가이사랴의 빌립 집사 집에 머물렀습니다. 예루살렘으로 가면 결박과 환난이 기다리고 있다는 성령의 경고 때문에 온 교회가 울며 바울을 만류하던 눈물의 현장이었습니다(행 21:12). 그 일촉즉발의 순간, 빌립의 네 딸은 바울의 곁을 지켰습니다. 자매들은 예언의 은사를 통해 바울이 걸어가야 할 순교의 길이 하나님의 거대한 구원 계획 속에 있음을 확증해 주었습니다. 남성 사도들이 전면에서 칼날을 맞설 때, 이 네 자매는 영적인 깊은 기도로 사도들의 뒤를 받쳤습니다. 바울의 상처 입은 발을 씻기고, 그의 영혼을 위해 가도하며, 예루살렘이라는 거대한 단두대를 향해 걸어가는 사도의 가슴에 하늘의 위로와 용기를 불어넣어 준 것입니다.
평생의 삶을 거룩한 산제사로 드린 여인들
빌립의 네 딸은 화려한 세상의 유행이나 로마의 문명에 마음을 빼앗기지 않았습니다. 세상은 종교도, 권력도 없는 네 명의 무명 처녀들을 주목하지 않았지만, 하나님은 제국의 심장소리보다 이들의 떨리는 예언의 기도 소리를 더 크게 들으셨습니다. 자신의 삶을 온전히 구별하여 거룩한 제단에 드렸던 네 자매의 순결한 목소리는, 박해로 얼어붙었던 초대 교회를 녹이고 복음이 세대를 넘어 흘러가게 만든 가장 아름다운 천상의 멜로디였습니다./ 발행인 윤광식
[다음 연재 예고] 사도들에게 존경받은 숨겨진 여성 사도, 감옥을 두려워하지 않은 유니아(Junia), 사도 바울조차 "나보다 먼저 그리스도 안에 있었고 사도들에게 존경받는 자"라고 극찬했던 위대한 여성 지도자가 찾아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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