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유럽 대륙의 첫 성령의 발원지였던 마케도니아의 빌립보 교회. 이 교회는 사도 바울이 감옥에 갇혔을 때도 눈물로 선교비를 모아 보낼 만큼 바울이 가장 사랑하고 신뢰했던 영적 고향이었습니다. 그러나 AD 62년경, 로마 감옥에 갇혀 있던 바울에게 빌립보 교회의 가슴 아픈 소식이 전해졌습니다. 교회를 지탱하던 두 개의 거대한 기둥, 유오디아(Euodia)와 순두게(Syntyche) 사이에 깊은 갈등의 균열이 생겼다는 뉴스였습니다.
바울은 감옥의 차디찬 바닥에서 펜을 들었습니다. 그리고 교회의 다른 어떤 문제보다 이 두 여인의 이름을 한 자 한 자 정성스럽게, 그러나 애끓는 심정으로 써 내려갔습니다.
복음의 전선을 함께 누비던 위대한 여전사들
성경을 깊이 읽지 않는 이들은 유오디아와 순두게를 그저 '교회 안에서 말다툼이나 벌인 철없는 여인들'로 오해하곤 합니다. 하지만 사도 바울이 묘사한 그들의 실체는 완전히 달랐습니다. 그들은 빌립보 교회의 개척 멤버이자, 박해의 최전선에서 바울과 함께 손을 맞잡고 영적 전쟁을 치렀던 핵심 리더들이었습니다.
"내가 유오디아를 권하고 순두게를 권하노니 주 안에서 같은 마음을 품으라 또 참으로 나와 멍에를 같이한 네게 구하노니 복음에 나와 함께 힘쓰던 저 여인들을 돕고..." (빌립보서 4:2~3상)
바울은 그들을 향해 "복음에 나와 함께 힘쓰던 저 여인들"이라는 격찬을 남겼습니다. 여기서 '힘쓰다'의 헬라어 원어는 '쉬나들레오(συναθλέω)'로, 경기장에서 목숨을 걸고 함께 싸우는 검투사나 운동선수들에게 쓰이던 단어였습니다. 그들은 빌립보의 거친 로마 권력과 우상숭배의 핍박 속에서 바울의 방패가 되어 함께 피를 흘렸던 '복음의 전우'였습니다. 교회의 그 어떤 남성 지도자들보다 강력한 영적 권위와 영향력을 가진 중추였던 셈입니다.
고대 교회의 리더십 구조와 '공적 지위'의 여인들
초대 교회사와 마케도니아 지역의 고고학적 연구자료는 유오디아와 순두게가 가졌던 사회적·교회사적 위치를 더욱 명확하게 증명합니다. 마케도니아 여성들의 독특한 사회적 지위에 관한 역사학자들의 연구에 따르면, 당대 그리스나 로마의 다른 지역과 달리 빌립보가 위치한 '마케도니아' 지역의 여성들은 경제적 독립권과 법적 지위, 그리고 사회적 영향력이 매우 높았습니다. 유오디아와 순두게는 빌립보 사회에서 상당한 영향력을 가졌던 상류층 여성이거나, 자신의 집을 대규모 가정 교회로 개방했던 유력한 자산가였을 확률이 큽니다.
바울은 편지에서 교회의 중대한 문제를 다룰 때 대개 직분이나 공동체의 이름을 사용했습니다. 그러나 빌립보서의 정점에서 두 여인의 실명을 직접 언급한 것은, 이들의 갈등이 단순한 사적 다툼이 아니라 빌립보 교회 전체의 존립과 방향성을 뒤흔들 만큼 영향력이 컸던 '공적 지도자들의 대립'이었음을 뜻합니다.
열심히 빚어낸 그림자, '주 안에서' 멍에를 꺾다
그렇다면 목숨까지 걸었던 두 여전사는 왜 갈등하게 되었을까요? 신학자들은 그들이 신앙이 없어서가 아니라, 오히려 하나님 나라를 향한 '열심과 성격의 차이' 때문이었다고 분석합니다. 교회를 너무나 사랑했고 복음의 열정이 뜨거웠기에, 사역의 방법론과 비전을 두고 서로 타협할 수 없는 평행선을 달렸던 것입니다. 열심이 깊어질수록 상처의 골도 깊어졌고, 두 기둥이 흔들리자 빌립보 교회 전체가 영적 몸살을 앓기 시작했습니다. 바울은 감옥에서 이 소식을 듣고 그들을 정죄하거나 누구 한 명의 편을 들지 않았습니다. 대신 유오디아와 순두게의 이름을 각각 따로 부르며 동일한 무게로 권면했습니다. "주 안에서 같은 마음을 품으라."그들의 열심과 헌신의 기준이 각자의 자아(Self)가 아닌,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가 되어야 함을 일깨운 것입니다. 바울은 교회 지도자들에게도 지시하여 "두 여인이 다시 복음의 멍에를 멜 수 있도록 곁에서 전폭적으로 도우라"고 명했습니다. 그들의 이름이 지워져야 할 이름이 아니라, 여전히 하나님 나라에 귀하게 쓰여야 할 거룩한 자산이었기 때문입니다.
생명책에 함께 기록된 아름다운 연합
바울은 갈등의 한복판에 선 두 여인을 위로하며, 그들의 사역과 이름이 도달한 최종 목적지를 선포하며 편지를 마무리합니다.
"...그 외에 나의 동역자들을 도우라 그 이름들이 생명책에 있느니라"(빌립보서 4:3하)
비록 지상 사역의 현장에서는 인간적인 한계와 성정 때문에 충돌하고 아파했을지라도, 하늘 보좌의 '생명책(Book of Life)'에는 유오디아와 순두게의 이름이 나란히, 그리고 영원히 기록되어 있다는 위대한 선언이었습니다. 교회사 전승에 따르면, 이 편지를 전달받은 유오디아와 순두게는 예배 처소에서 성도들이 보는 앞에 눈물로 서로를 껴안으며 극적인 화해를 이룬 것으로 전해집니다. 각자의 의(義)를 꺾고 예수 그리스도의 마음을 품었을 때, 빌립보 교회는 갈등의 흉터를 치유하고 초대 교회 역사상 가장 아름다운 연합과 선교의 모델로 우뚝 서게 되었습니다. 부활 승천 이후의 교회사 속에서 여인들은 완벽한 존재들이 아니었습니다. 때로는 박해에 떨었고, 때로는 고독했으며, 때로는 서로 부딪치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들의 깨어짐과 헌신, 그리고 화해의 발걸음을 통해 초대 교회의 기초를 놓으셨습니다. 유오디아와 순두게가 보여준 '주 안에서의 원니스(Oneness)'는 오늘날 수많은 갈등 속에서 살아가는 현대 교회와 성도들에게 가장 강력하고 눈물겨운 복음의 해답을 제시하고 있습니다./ 발행인 윤광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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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 속 여인 시리즈 연재를 마치며]
그동안 [성경 속 여인 시리즈]를 사랑해 주시고 기도로 동역해 주신 한국기독일보 독자 여러분께 깊은 감사를 드립니다. 구약의 에스더와 룻에서부터, 복음서의 마리아와 막달라 마리아, 그리고 초대 교회의 문을 열었던 마리아, 루디아, 브리스길라, 뵈뵈, 빌립의 딸들, 유니아, 다비다, 그리고 마지막 순두게와 유오디아에 이르기까지 구속사의 고비마다 목숨을 걸고, 삶을 깨뜨려 동역했던 여인들의 위대한 발자취를 추적해 왔습니다. 세상의 역사는 그들의 이름을 지우려 하거나 변방에 두려 했지만, 하나님의 구원 역사는 이들의 순결한 눈물과 타협 없는 신앙을 복음의 가장 찬란한 주춧돌로 삼으셨습니다. 이번 연재를 통해 독자 여러분의 삶의 자리에서도 이 위대한 여인들과 같은 '하나님 나라의 동역자'로 일어서는 거룩한 결단이 있기를 소망합니다. 더 깊이 있고 은혜로운 새로운 연재 기획으로 다시 찾아뵙겠습니다. 감사합니다. 복음의 파수꾼, 한국기독일보 올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