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적 경제관: 르호봇 경제(9) 거룩이 자본(Capital)이다.

글 김태구 박사 (노무라금융투자 CRO, 경제학박사)

2022-12-17 00:20:14  인쇄하기


하나님의 법을 붙잡고 카도쉬를 이루는 것은 자본을 쌓는 것입니다. 자본을 축적하면 불황을 이기어 낼 수 있습니다. 경기침체에도 무너지지 않습니다. 더 좋은 날을 준비할 수 있습니다. 카도쉬를 이루는 땅에서 백 배, 육십 배, 삼십 배의 열매가 맺힙니다.”-본문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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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종 프리미엄 제품을 둘러싼 뉴스를 대하다 보면 등장하는 단어가 있습니다. 바로 Open-run 입니다. Open-run은 백화점 문이 열리자마자 쇼핑을 하기 위해 소비자들이 달려가는 것을 일컫습니다. 20205월 샤넬 브랜드의 가격 인상을 앞두고 미리 제품을 구입하려는 사람들이 백화점에 장사진을 치면서 샤넬 Open-run’ 이라는 신조어가 등장하였습니다. 202112, “천만원 들고 백화점 개구멍 찾는 샤넬 노숙자들’”이라는 기사가 조선일보에 게재된 적도 있었습니다.

 

이는 시장이 작동하는 수요와 공급의 보편적인 원리와 배치됩니다. 이를테면 제품에 대한 수요가 증가하는데 공급이 부족하면 가격이 올라갑니다. 제품의 공급이 증가하는데 수요가 따라주지 않으면 가격이 내려갑니다. 물론 시장은 수요공급의 부드러운 곡선처럼 움직이지 않고 거칠게 움직입니다. 하여튼, 시장의 상식은 제품의 가격이 올라가면 수요가 줄어드는 것입니다.

 

Open-run물건 값이 비쌀수록 잘 팔린다에 해당하는 경우입니다. 이를 일컬어 베블렌 효과(Veblen Effect)’1)라고 합니다. 베블렌 효과는 얼핏 합리적이지 못한 소비로 보입니다. 하지만 제품이 주는 만족을 따져보면 얘기는 달라집니다. 예를 들어 누구나 샤넬 백을 사면 당장 기능적인 만족을 얻습니다. 기능적인 만족은 샤넬 백이 아니더라도 쉽게 얻을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기능적인 만족은 객관적인 만족의 범주에 넣어도 무방합니다. 이와 달리 주관적인 만족이 존재합니다. 왜냐하면 샤넬 백이 후광효과를 주기 때문입니다. 고가의 백을 갖고 다니므로 과시적인 만족을 얻습니다. 과시적인 만족은 사람들의 이목을 끌 때 얻는 것이므로 평범함을 뛰어 넘어야 합니다.

 

소비의 목적이 기능적인 필요를 충족시키는 것에 국한되는 것은 아닙니다. 과시적인 만족을 얻는 것도 소비의 목적입니다. 명품이 자신의 경제 수준을 드러내는 상징물이 됩니다. 따라서 과시적인 것을 더 중시하게 되면 과한 돈을 기꺼이 지출합니다. 심지어 미국에는 Dow Jones Luxury 지수가 존재합니다. 이는 프리미엄 제품을 생산하는 상장 회사들의 주가를 하나로 묶은 지수입니다. Dow Jones Luxury 지수는 과거 10년 동안 2배 정도 상승을 하였습니다.

 

빈곤의 상황에서 명품은 그야말로 사치입니다. 그러나 가난을 벗어나게 되면 과시적인 것에 눈이 돌아갑니다. 문제는 돈입니다. 더 많은 돈이 필요하고 더 많은 돈을 가져야 합니다. 국내 복권위원회는 과거 5년간 복권 판매액이 꾸준히 증가하여 2022년에는 6조원에 달하는 것으로 발표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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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구당 월평균 복권 소비액

성인 중 63%1년에 1회 이상 복권을 구매한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GDP가 증가하면 복권 판매액이 증가하지만, 복권은 불황을 먹고 성장합니다. 최근과 같이 고금리, 고환율, 고물가 등으로 생계가 어려워지면 '일확천금'을 추구하는 심리가 증폭됩니다. 그렇다고 복권 당첨이 가능하긴 할까요? 복권 당첨 확률은 벼락 맞을 확률 보다 낮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일종의 무작위 이론인 것이지요. 누군가 아파트 옥상에서 돈을 던졌을 때 하필 내가 그곳에 서있어야 그 돈의 주인이 되는 것입니다. 조사에 따르면 복권이 당첨된 후 행복감은 급격히 상승합니다. 소비 욕구도 급격히 상승합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 행복감이 당첨 이전 수준으로 되돌아 갑니다. 때로는 그 소비 욕구 때문에 빚까지 지는 경우도 발생합니다.

 

그래서 사람들이 묻습니다. “기능적 차이가 있는 것도 아니고 내구성이 뛰어난 것도 아닌데 수십 배의 가격을 지불하고 명품을 구매하는 것은 허영이 아닌가요? 돈을 얻기 위해서는 땀 흘려 일해야지 복권에 인생을 걸어야 하나요?” 이러한 질문들을 하여도 막상 경제적인 여유가 있다면 명품을 갖고 싶어 합니다. 복권으로 인생을 역전할 수 있는 기회를 붙잡고 싶어 합니다. 사람들의 태도는 대체로 이중적입니다.

 

Open-run, 베블런 효과, 무작위 이론 등은 사회의 한 구석입니다. 그런데 같은 뿌리를 갖고 있습니다. 이 뿌리는 육신의 정욕, 안목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요일 2:16)이요 세상으로부터 온 것입니다. 세상은 눈에 보이는 것에 가치를 부여하고 그것을 쫓아 살게 합니다. 이와 달리 하나님으로부터 오는 것은 무엇일까요? 그것은 거룩입니다. 하나님은 거룩하신 분입니다. 그 하나님이 우리를 하나님의 백성으로 삼으시고 거룩을 요구하십니다.

 

나는 너희의 하나님이 되려고 너희를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낸 여호와라 내가 거룩하니 너희도 거룩할지어다”(11:45)

 

그렇다면 성경이 말하는 거룩은 무엇일까요? 우리는 흔히 거룩하면 금욕주의를 떠올립니다. 왠지 돈에 대한 욕심을 가지면 거룩하지 못한 것으로 보입니다. 쾌락에서 멀리 떠나야 거룩해 보입니다. 도시 한복판을 떠나 산 속에서 세상을 등지고 살면 그 역시 거룩해 보입니다. 세상의 권력과 명예를 가까이 하지 않는 것이 거룩한 삶이라 여겨집니다. 소위 성스러운(Holy)’이라는 단어가 주는 이미지가 이러한 것들에 고착화되어 있다면 꽤나 오해된 것입니다. 성경이 의미하는 거룩에 관련된 단어는 카도쉬(קָדוֹשׁ)’입니다. 어원적으로는 구분된(Separated)’, ‘다른(Different)’을 함축합니다. 여러 것들로부터 따로 떼어 놓으면 구분됩니다. 여러 것 중에 특별하면 다르게 됩니다. 구분되고 다르려면 기준이 필요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모호합니다.

 

레위기 19장에는 거룩에 대한 기준들이 나옵니다. 부모를 공경하는 것이 카도쉬입니다. 안식일을 지키는 것이 카도쉬입니다. 신상을 부어만들지 않는 것이 카도쉬입니다. 하나님께 드릴 때에 기쁘게 받으시도록 드리는 것이 카도쉬입니다. 곡식을 거둘 때에 밭모퉁이까지 다 거두지 않고 떨어진 이삭을 줍지 않는 것이 카도쉬입니다. 도둑질하지 않는 것이 카도쉬입니다. 하나님 이름으로 거짓 맹세하면 카도쉬가 아닙니다. 품꾼의 삯을 주지 않고 밤을 보내는 것은 카도쉬가 아닙니다. 카도쉬는 귀먹은 자를 저주하지 않고 맹인 앞에 장애물을 놓지 않는 것입니다. 불의를 행하지 않고 공의로 재판하는 것이 카도쉬입니다. 카도쉬는 이웃의 피를 흘려 이익을 도모하지 않는 것입니다. 거류민을 학대하지 않는 것이 카도쉬입니다. 무게를 잴 때 공평한 저울을 사용하는 것이 카도쉬입니다.

 

이렇게 많은 카도쉬의 기준들은 무엇을 얘기할까요? 예수님은 이를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과 이웃을 자신과 같이 사랑하는 것이라고 요약하셨습니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 하셨으니 이것이 크고 첫째 되는 계명이요 둘째도 그와 같으니 네 이웃을 네 자신 같이 사랑하라 하셨으니 이 두 계명이 온 율법과 선지자의 강령이니라(22:37~40)

 

그러고 보니 우리가 귀가 따갑도록 들은 하나님 사랑과 이웃 사랑이 바로 카도쉬입니다. 카도쉬를 이루려면 구분되고 달라야 합니다. 가나안 입성을 앞둔 이스라엘 자손들의 카도쉬를 위해서 하나님이 법을 주셨습니다. 하나님의 법은 애굽과 가나안 족속들의 그것들과 구분되고 다릅니다. 하나님의 법을 들어내면 거룩이 깨집니다. 왜냐하면 애굽 땅의 풍속을 따르고 가나안 땅의 풍속과 규례를 따라 살게 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프로젝트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가나안 땅에 들여보내 큰 나라 사람(4:6)으로 만드는 것입니다. 이의 완성을 위해 주어진 것이 하나님의 법입니다. 3400여 년 전에 선포된 하나님의 법이 지금도 유효할까요? 이를 지키어 사는 것이 고리타분한 일이 아닌가요? 하나님의 법은 곧 하나님의 성품입니다. 하나님의 성품은 영원합니다. 하나님의 성품이 변하면 스스로 충돌이 일어납니다. 하나님의 성품으로부터 온 하나님의 법은 우리에게 지혜요 지식입니다.

 

하나님의 법을 붙잡고 카도쉬를 이루는 것은 자본을 쌓는 것입니다. 자본을 축적하면 불황을 이기어 낼 수 있습니다. 경기침체에도 무너지지 않습니다. 더 좋은 날을 준비할 수 있습니다. 카도쉬를 이루는 땅에서 백 배, 육십 배, 삼십 배의 열매가 맺힙니다. 세상에서는 승자가 모든 것을 갖습니다(Winner takes it all). 만약 카도쉬로 승자독식을 이루면 모든 사람들을 살리게 됩니다. 눈 앞의 어려움 때문에 카도쉬를 훼손하면 자본을 갉아 먹게 됩니다.

 

청교도의 영성을 소유한 지성적 목회자로 알려진 존 찰스 라일(John Charles Ryle, 1816-1900)이 거룩을 다음과 같이 정의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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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룩이란 습관적으로 하나님과 한마음을 갖는 것을 말합니다. 하나님의 판단에 동의하고 그분이 미워하시는 것을 미워하며 사랑하시는 것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이 세상의 모든 일을 성경의 기준에 비추어 판단하는 행위를 의미합니다.”

Open-run, 베블런 효과, 무작위 이론 등은 카도쉬와 어긋납니다. 이러한 것들의 결국은 길가, 돌밭, 가시떨기와 같이 망하는 것입니다. CEO가 고진감래를 이렇게 해석했습니다. “고객에게 진심을 다하면 감동이 돌아옵니다.” 이것을 하진감래로 바꾸어 보겠습니다. “하나님께 진심을 다하면 감동이 돌아옵니다”. 이 시대에 카도쉬가 진정한 경쟁력이요 자본입니다.

 

너희는 재판할 때나 길이나 무게나 양을 잴 때 불의를 행하지 말고 공평한 저울과 공평한 추와 공평한 에바와 공평한 힌을 사용하라 나는 너희를 인도하여 애굽 땅에서 나오게 한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이니라 너희는 내 모든 규례와 내 모든 법도를 지켜 행하라 나는 여호와이니라”(19:35~37)

1)베블런 효과는 미국의 사회경제학자인 소스타인 베블런(Thorstein Bunde Veblen)이 언급했기 때문에 그의 이름을 따서 베블런 효과로 불리우고 있습니다.

 (다음호: 제 십일시의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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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글 김태구 박사 (노무라금융투자 CRO, 경제학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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