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사 오늘(2월16일)- 성경을 사랑했던 신앙인 윤동주 시인

학생시절엔 주일학교 교사로, 형무소에서 신약성경 탐독해

2016-02-16 08:24:02  인쇄하기


216일은 윤동주 시인이 일본 후쿠오카 형무소에서 사망한 날이다.

시인 윤동주는 일본 유학시절 독립운동을 한 혐의로 체포되어 2년의 실형을 받고 형무소에서 정체모를 주사를 맞고 28세의 꽃다운 나이로 해방 6개월을 앞둔 1945216일에 사망했다. 

윤동주 시인은 일본제국주의의 탄압이 극심한 환경에서도 시종 민족의 독립과 자유를 위하여 로 삶을 바친 저항시인이자 신실한 신앙인 이었다. 

윤동주 시인은 기독교집안에서 태어난 모태 신앙인이다. 조부 윤하연은 장로였으며 부친 윤아연은 명동소학교 교사이자 집사였다. 아버지 품에서 유아세례를 받은 윤동주는 은진 중학교 시절 19353월부터 용정중앙교회 주일학교에서 유년부 아이들을 지도했다. 그해 9월 평양 숭실중학교로 편입하였다가 1936년 신사참배 거부로 숭실중학교가 폐교되자 다시 용정 광명중학교 4년에 편입하였다. 

윤동주 시인이 다닌 학교는 모두 기독교학교이며 민족학교였다. 이후 1938년 서울연희전문학교에 입학하였다. 첫 학기를 마치고 고향 용정으로 돌아와 용정 여름 성경학교에서 학생들을 가르치기도 했다. 

연희전문학교 시절 윤동주 시인은 일본 형사들의 눈을 피해 하숙집을 옮겨 다니며 살아야 했고 19411227일에 연희전문학교 문과를 졸업했다. 연희전문학교 시절에 그 유명한 서시’ ‘십자가등의 시를 썼다. 

19424월에 윤동주 시인은 일본으로 건너가 릿쿄대학 영문과에 입학하였다가 군국주의가 판치자 한 학기 만에 도시샤대학 영문과로 편입했다. 그러나 19437월 윤동주는 송몽규와 함께 독립운동 사상범으로 긴급 체포되었다. 

일본 경찰은 윤동주를 독립운동을 한 혐의로 취조서에 기록하고 유학시절 그가 쓴 상당분의 시와 일기를 압수했다. 1944222일 윤동주 시인은 일제의 법원에 기소되고 331일에는 독립운동 죄목으로 2년형을 받았다. 송몽규 역시 26개월의 언도를 받았다. 

윤동주는 투옥 후 고향집에 부탁하여 보내온 신약성서를 옥중에서 읽었다. 그는 생을 마감하기까지 성경을 손에서 놓지 않았다. /윤광식 기자(kidokilbo@daum.net)

이전글 | 교회사 오늘(2월17일)- 인디언 최후 전사 ‘제로니모’ 그 이후
다음글 | 교회사 오늘(2월15일) - 갈릴레오 갈릴레이 출생

목록보기